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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2024.09.28) 이른 새벽 단체 카톡방의 김한 친구가 묵직하게 화두 하나를 던집니다. 좋아하는 일 딱 한 가지를 들라는 것입니다. 몸에 배어있어서 바로 튀어나와야 정답일진데 저는 그렇지 못해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일과 후 사람들과 술 마시기가 떠올랐으나 다소 세련되지 못하고 제가 술을 그리 좋아하는 것도 아니어서 좀 더 생각을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남에게 즐거움을 안기는 거”라는 고상한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저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활기가 돋고 또한 사람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으며 주변 사람 칭찬에도 인색하지 않고 술자리를 즐겁게 하는 재주도 있으니 딱 좋아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몽니를 부린 적도 있었으니 그리 보지 못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슬픈 자영업(2024.09.27) ‘22년 슬픈 자영업 인생 오늘 맥주 한 병 팔았다“ 오늘의 자영업자 힘든 현실을 함축해서 잘 표현한 모 일간지 어느 날 일면 표제입니다. 저 맥주 한 병을 팔기 위해 일찍 나와 쓸고 닦고 준비하고 10시간 이상을 조마조마하며 기다리는 시간으로 하루를 보냈을 게 눈에 훤합니다. 저런 날이 저 하루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그다음 날 또 이어질까 그게 더 걱정이었을 것이고 아쉽게도 그리되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라님들이 저런 백성들의 고통에는 입도 뻥긋 안 하고 소고기 돼지고기로 만찬을 즐겼다는 슬픈 소식만 온 천하에 가득합니다. 금준미주 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촉루낙시 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운동회 날(2024.09.26) 배달 다녀오다 우연히 들린 서울교육대학교 운동장에 부속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운동회가 한창입니다. 마침 2학년 학생들의 오자미 던지기가 열리고 있었는데요, 우리 시절의 학교 운동회는 학부모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지역잔치이기도 했는데 요즘은 학교 행사로만 그치는지 학부형들은 단 한 분도 안 보입니다. 고무신 대신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덧신을 신고 가는 날이기도 하고 달리기 시합도 있어서 참여는 했지만 단 한 번도 꼴등을 면치 못했습니다. 공책이나 연필을 타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오자미는 일본말로 알고 있는데 요즘도 그냥 쓰는지 어떻게 달리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공장 새마을 운동(2024.09.25) 저의 1983년 사회 첫 출발 첫 보직이 공장 새마을입니다. 지금은 아마 모든 조직에서 없어진 자리일 것입니다. 여러 업무 중의 하나가 공장 잡초제거였는데요. 정말 열심히 풀을 뽑았습니다. 혼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당시 앞마을 평여리 이상철 이장님의 협조를 받아 동네 아짐들을 인부로 고용하여 공장 내 이곳저곳의 풀을 뽑았습니다. 덕분에 근사미, 스미치온이라는 농약도 알았고요. 한번은 장난삼아 뽑은 풀을 리어카에 가득 싣고 저는 앞에서 끌고 뒤에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짐 둘 더러 밀라고 하면서 본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횡단을 한 적도 있습니다. 역시나 이를 안쓰럽게 여긴 과장님 한 분이 계셨으니
낮에 뜬 달(2024.09.24) 어제 오전 10시 우연히 쳐다본 서초 하늘에 달이 떠 있습니다. 뭔가 아쉬움이 있어 집에 들어가지 못해 난감해하는 그런 달빛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시간에 달이 떠 있을 수 있나 새삼스러워서 30여 분이 지나 다시 나간 하늘에 아까보다는 다소 빛이 엷어졌으나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음력으로 21일 무렵이니 예전에도 이날 이렇게 떠 있었을 것이고 또 눈에 들어오기도 했으련만 오늘따라 마치 옛날에는 없었던 일처럼 새롭게 들어와 앉을까요? 그것은 제 마음이 슬퍼서입니다. 새벽에 쓰레기 분리수거물을 열심히 정리하던 중 “자고 있는데 시끄럽게 한다!”는 꾸지람을 애엄마한테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잘해보려고 한 일이 짜증을 유발했으니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옆자리와 친하게(2024.09.23) 교대역 주변 일점사라는 음식점 우리 옆자리에 세 명의 건장한 사내가 소주잔을 놓고 꽤 분위기가 진지합니다. 워낙 붙어있어서 뭔가 친해지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 제가 소폭 3잔을 만들어 권하면서 나이대를 고려하여 “우리 60~70세대가 좀 더 신경을 기울여 살폈어야 지금 세대들이 편할 텐데 그렇지 못해 미안하다!”는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인근 IT업체 직원들이라는 40대 셋이 마치 말을 맞춘 듯 “아이고 무슨 말씀을요. 어르신들 계셔서 저희가 있습니다. 조금도 생각지 못한 말씀에 감동입니다.” 바로 술잔이 서로 오고 갑니다. 네 자리 내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안줏값보다 술값이 더 많습니다.
맥문동을 훑다가(2024.09.22) 요즘 공원이나 건물 화단의 가장자리 또는 길 주변에서 맥문동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마침 올해는 날이 계속 더웠던 터라 꽃과 열매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서초동 남부터미널 주변에서 만난 맥문동 꽃대 하나를 호기심이 발동하여 밑에서부터 위까지 꽃과 열매를 쭉 훑었는데요. 마주한 손가락들이 무척 따갑습니다. 혹시 벌레가 숨어 있었을까 살폈더니 꽃과 열매를 받치는 꽃받침(?)이 가시 너덧 개로 이루어져 그게 버티면서 손을 찌른 것입니다. 상처를 낼 정도는 아니어서 물로 씻어내니 금방 가셨습니다만 동물들의 보호색 비슷한 장치가 아닌가 생각되어 경이로웠습니다.
비로소 가을(2024.09.21) 갑자기 10도 이상 떨어진 새벽길 마침 내리는 비까지 더해져 노출된 팔에 추위까지 느껴집니다. 앞으로는 30도를 오르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니 계절이 바뀌는데 딱 하루면 충분하네요. 입추, 처서, 백로가 무색해지고 내일 추분만이 온전한가요? 저보다 더 많이 사신분도 덜 사신분도 미증유의 긴 여름과 긴 더위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내년에도 이처럼 덥다면 또 어찌 보낼까 미리 염려하시지 말고 그저 오늘 다가온 가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그만입니다. 가로수 은행들이 길에 떨어져 오는 가을을 반기고 추석 상에 오르지 못한 밤들도 무장애 숲길에 몸을 던져 존재를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