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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림중학교 학생 칭찬(2024.10.24) 지난 일요일 오후 여섯 시 무렵 광주조선대학교 앞 정류장에서 제가 탄 시내버스로 여학생 셋이 오르더니 그중 한 아이가 제 옆자리에 앉으면서 밝고 상냥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넵니다. 시내버스에서 낯 모르는 사람의 인사는 생애 처음입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워 여기 학생이냐고 묻자 운림중학교 2학년이라고 합니다. 이런 가상(嘉尙)한 아이의 인사에 그냥 앉아만 있을 수 없어 일만원권 한 장을 건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먼저 내리는 저를 향해 친구들까지 합세하여 손을 흔들어 보이는데 더욱 예뻐 보입니다. 덩달아 이런 교육을 하신 아이의 부모님과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나옵니다.
성정이 거친 아짐(2024.10.23) 퇴근길 3호선 전철에 노란 모자에 뿔테 안경 그리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른 나름 멋을 부린 60대로 보이는 아짐 한 분이 올라옵니다. 조금은 복잡하고 어수선한데 옆의 아가씨에게 대뜸 배낭을 앞으로 메라고 사납고 거칠게 소리를 지릅니다. 얼마나 무안했을까요? 그러더니 정작 당신은 전철이 어쩌고저쩌고 어디론가 큰 소리로 전화를 합니다. 공중도덕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통화를 마친 아짐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합니다. 놀랍게도 제목이 알퐁스 도데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뤼브롱 산으로 돌아가겠다 할 지경입니다.
기억력 과신(2024.10.22) 제 주변에서 기억력이 남달리 좋으신 분들을 보면 자신의 기억력을 과신한 탓인지 동일 사안에 대해 상대와 다르면 자신의 기억만을 옳다고 주장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현상은 점점 더 심해져 가는데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최근 두 모임에서 이런 저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여 여러 친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요, 한참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제대로 돌아오거나 다른 이유로 제 기억이 틀렸음을 알 때는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번의 두 사건은 모두 술이 빚은 기억의 오류이긴 합니다만 그 근저에는 잘난 체하려는 저의 습성에 그 근본을 두고 있습니다. 저는 당 멀었습니다. 반성합니다.
집 밖의 사위(2024.10.21) 올여름을 지나면서 광주의 장모님께서 건강이 염려스러울 정도에 이르셨다 하여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한 달에 한 번은 찾아뵙고 사람 노릇을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어제부터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제까지의 대접받는 사위에서 대접하는 사위의 모습으로 변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이지요. 그러나 사위는 백년지객 즉 언제나 예의로 대해야 하는 어려운 손님이라는 옛말이 틀림이 없습니다. 저를 챙기시려 애쓰시는 두 분이 저로 인해서 오히려 더 힘드시겠습니다. 방법을 달리해서 밖에서만 뵙고 밖에서 정성을 다하고 밖에서 그냥 올라오는 “집 밖의 사위”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머니 단술(2024.10.20) 세상에 나와서 제일 처음 맛본 술이 단술입니다. 어머니께서는 밥구리(밥 바구니)에 담아 처마 밑에 걸어둔 보리밥이 쉬면 그게 아까워 누룩을 섞어 단술을 만드셨는데요. 먹기에 달착지근하지만 약간의 술기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배고플 때 목축이고 배 불리는데 한몫을 충분히 했는데요. 쉰밥 조차 버리지 않으려는 조상님들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회사 시절 전주 출장길에서 콩나물국밥과 함께 모주라는 술을 마셨는데요. 맛이 단술과 흡사해서 단술도 세상 밖으로 나왔나 생각했는데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어 가공한 술이라 합니다. 이제 어머니 안 계시니 특별히 맛볼 기회가 없어 그 또한 슬픔입니다,
어머니 하나님(2024.10.19) 길을 가는데 두 청춘 남녀가 저에게 다가서더니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아시냐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합니다. 살다 살다 아버지 하나님은 수없이 들었으나 어머니 하나님은 처음 듣는 소리여서 이단이려니 생각하여 고개를 흔들었는데요. 그렇지만 아버지 하나님이 있으시다면 어머니 하나님이 그냥 공허한 메시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그 실체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안상홍이란 분이 이끌어 내셨네요. 그리고 교회까지 설립하여 그 교세가 상당한 수준으로 보입니다. 저와 같은 비신자로서는 아버지 하나님은 뭔가 신비롭기도 하고 종교 차원으로 이해가 되는데 어머니 하나님은 그냥 세속적으로만 들립니다.
애엄마의 칭찬(2024.10.18) 살면서 처음으로 애엄마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100점을 맞고 들어와 엄니께 칭찬을 들을 때와 똑같은 기분입니다. 화장실 샤워기 위치가 제 키 높이와 거의 비슷해서 물줄기가 얼굴 정면으로 쏟아져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거치대 높이를 바꿨으면 좋겠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어서 물줄기 옆에서 어정쩡하게 샤워를 했었는데요. 불현듯 다이소에서 여러 샤워기 헤드를 진열해 놓은 장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그중 부드럽게 분사한다는 글이 붙은 걸 사와 돌리고 빼고 새 걸 돌리고 넣었습니다. 물줄기가 목 부분으로 내려오는 대성공입니다. 애엄마가 바꾸려고 했다면서 이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대견하다고 합니다. 저는 곧 우쭐해졌습니다.
토란의 등차수열(2024.10.17) 이튿날 두 번째 뿌리에서는 두 개가 반깁니다. 첫 번째 하나에서 하나가 열렸고 두 번째에서는 두 개가 열렸으니 세 번째에서는 3개가 열릴 것이고 이런 식으로 마지막 열다섯 번째에서는 15개 열린다면 1,2,3,4,,............15 이렇게 연속한 두 항의 차가 일정한 등차수열을 이루므로 그 합은 15×(1+15)÷2=120 즉 120개의 토란을 수확하여 초기 투자 15개의 8배를 수확하는 것입니다. 상상은 즐거운 일입니다. 10개에 그치면 어떻고 15개면 어떻습니까? 등차수열까지 생각해냈으므로 농업에 수학까지 완전정복한 기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러 멀리 영암에서 전화로 알려주는 병호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지금 커가고 있으므로 며칠 더 두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