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2763)
미륵교도 방문(2024.06.20) 미륵교도임을 자처하는 30대 초반의 두 여인이 들어왔습니다. 여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가씨라 해야 할지 얼굴은 아직 소녀입니다. 내칠 수는 없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듣는데, 포교가 목적인지 헌금이 목적인지 헷갈리고 대화를 나눌수록 제가 양정교를 설파하고 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아직 점심 전이라는 두 아가씨를 건물 내 음식점으로 데려가 먼저 계산을 하고 나와 식사 후 다신 들린 그녀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인 미륵불교가 증산교의 한 분파라고 알려주며 기대하던 바도 일부 충족시켜주면서 아침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선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그만이라는 이야기로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에 또 들리겠다 하는데 글쎄요? 왜 저리 다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딸아이 결혼 후(2024.06.19) 딸아이 결혼 후 벌써 100여 일을 훌쩍 넘겼습니다. 결혼은 아이들이 했는데 더불어 저에게는 인간적 성숙을 안긴 기간이었습니다. 아비로써 지아비로써 잘못한 점이나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혹시 상처를 안긴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는데요. 역시나 여러 측면에서 기여한 바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밖으로만 열려있던 부등호를 안으로 열리도록 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동등하게 가져가자는 기치 아래 나름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별거는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가고 눈에 보이는 집안의 작은 일에도 기꺼이 손을 보태는 것인데요. 진심이 조금씩 전달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벗은 몸만 보다가(2024.06.18) 완전히 벗은 몸만 몇 번 본 분을 옷을 입은 채로 만난다면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가게에 신사 한 분이 오셨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대뜸 사시는 곳을 물어볼 수는 없어서 우호적인 대화 몇 마디 나눈 후 혹시 댁이 여의도 아니냐고 슬쩍 던집니다. 깜짝 놀라는 그분에게 같은 아파트 주민이며 샤워장에서 뵈었다고 하자 자신은 전혀 모르겠다고 합니다. 옆 국제전자 건물에 사무실이 있다는 그분의 경계를 풀어드리려고 칭찬 하나를 덧붙입니다. “항상 모든 동작이 점잖고 품격이 있으셔서 인상 깊게 봤습니다. 샤워장 이용 시간이 비슷하니 앞으로는 제가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끝
조왕신과 좀도리쌀(2024.06.17) 어머니께서는 새벽 식구들의 아침상을 준비하기 위하여 부엌으로 나서면 먼저 부뚜막의 조왕신에게 샘물 한 그릇을 올리고, 보리쌀 비중이 훨씬 높았음에도 쌀을 씻으시면서 좀도리 쌀을 꼭 덜어내셨습니다. 모두가 우리 가족을 위한 정성이셨지만 다른 집들의 어머니들도 다들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살만하게 된 것도 모두 이런 어머니들의 정성과 희생 그리고 이웃을 위한 배려 덕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부엌들이 모두 방안으로 들어왔으니 조왕신 머무실 공간이 없어졌고 항상 수돗물이 철철 넘치니 새벽 샘물의 신성함도 가셨으며 쌀 담은 뒤주 또한 자취를 감췄으니 오호통재(嗚呼痛哉)라! *경주 백률사 조왕신 (출처: 카페 답사 ,사람을 배우다 )
자귀나무꽃도 벌써(2024.06.16) 계절이 빨라지자 자귀나무꽃들도 그냥 있을 수 없습니다. 붉은색 깃털을 모아 부채춤을 추는 것처럼 세상을 향해 쭉 펼쳐놓아 떠오르는 해가 시샘을 할 정도로 주변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간밤 긴 사랑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제가 다가가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합환수 잎들은 여전히 서로 붙어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직은 연장으로 쓰기에는 몸이 턱도 없이 덜 자란 짜구나무는 이 모두가 부럽습니다. 짜구는 자귀의 전라도 말이고 합환수는 자귀나무의 또 다른 이름이니 오늘은 그저 한 그루 자귀나무 이야기이지요. 앗! 유정수, 야합수, 여설수, 합혼수 모두 같은 나무 다른 이름들입니다.
기다리는 마음(2024.06.15) 우리 이웃, 병원과 약국이 동시 개원한 지 5일이 지났습니다. 아무래도 저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데 오시는 손님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첫 개원인지라 아직은 아는 분들이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다림의 연속이지요. 저 기다림이 가곡 기다리는 마음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 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 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20년 기다림에 익숙한 제가 마음속으로 한 마디 전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기 손님은 다 따로 있는 거에요. 곧 줄을 잇습니다. 잉!”
할머니와 동무가(2024.06.14) 새벽 한강길에서 79살 할머니와 동무가 되었습니다. 5시가 안 된 시간이었으니 가장 이른 시간에 동무가 된 최초의 여인입니다.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집에 영감이 85살인데 같이 나가자고 해도 뭉그적뭉그적 누워만 있다.” 하시며 “허리도 안 아픈지 모르겠다. 삼시 세끼 한 끼를 거르지 않으니 밥해대기도 힘들다.” 하십니다. 저더러는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시길래 제가 씩씩하게 대답합니다. “네! 이렇게 일찍 나오는데 모르시겠습니까? 아침부터 제가 해결합니다.” 동작역 갈림길에 이르러 할머니는 옆 체력훈련장으로 저는 역으로 서로의 길을 갑니다. “뜻밖의 인연에 반가웠다!”는 할머니를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최순이(2024.06.13) 일찍 찾아온 더위와 무료함을 피하여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오후 시간 가게에 7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아짐 손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슬아슬 짜증이 날 듯한 표정, 이를 달래야 하는 저의 사명감. 계산하려고 받아든 신용카드에 이름이 선명합니다. “어머나 최순이 씨세요? 우리 초등학교 동창 중에도 최순이 양이 있는데 아주 예쁘고 귀여워서 우리 남자 동창들 가슴을 지금도 설레게 하는데요. 역시나 사모님도 미모가 빼어나십니다. 으뜸입니다.” 진짜냐고 거듭 물어보시기에 제 글까지 보여드리며 칭찬을 거듭했습니다. 함박웃음과 함께 나가시는 그녀를 건물 앞길까지 바래다 드리며, 우리 동창 최순이 만세! 최순이 고객분도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