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763) 썸네일형 리스트형 살구나무 추억(2024.06.12) 우리 동네 여의도 초등학교의 살구가 노랗게 잘 익었습니다. 그 옆의 잘 익은 붉은 앵두가 다 떨어지자 노란 살구가 뒤를 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앵두와 마찬가지로 저 살구 역시 손 하나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회문리 우리 집에는 살구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어머니께서 하지 무렵 작은 보리농사 수확 후 도리깨로 보리타작을 하시면 저는 옆에서 잘 익은 살구를 입에 넣으며 몸에 붙은 보리꺼시래기(보리까락)의 가려움을 달랬는데요. 그러던 어느 해 무슨 연유인지 아버지께서 베어버려 그 서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보통의 살구보다 좀 작았으니 개살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그래도 빛 좋은 개살구인데 화장실 명상(2024.06.11) 1층 화장실 문이 열려있고 청소도구가 즐비하여 마주치면 조금 머쓱할 것 같아 청소아짐을 피하여 2층으로 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청소아짐이 밀걸레 하나만을 들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서 있습니다. 아뿔싸! 그렇다고 갑자기 방향을 바꿔 다시 내려올 수도 없고. “어머나 안녕하셔요, 2층도 담당하시나요?”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들어가 일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분 도대체 나갈 기색이 없습니다. 계속 무언가 하시는지 뽀시락 소리가 들립니다. 기다리기 무료한 저의 아침 명상이 시작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들어 가장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디서? 2층 화장실에서! *토란잎에 맺힌 물방울, 제가 토란을 기르는 이유입니다 측은지심은 있으나(2024.06.10) 한적한 일요일 낮 3호선 전철 제가 탄 차량의 건너편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빼빼 마른 아짐 한 분이 건너옵니다. 저 몸으로 삶이 유지될까 걱정하던 중 한 자리 건너 제 옆에 앉습니다. 그러더니 최대한 남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천 원 한 장만 달라고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최대한 감추고 싶었을 저 아짐이 가련하여 누구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확 생겼을 것입니다. 주섬주섬 잔돈을 찾는데 만 원짜리 주시면 거슬러 드리겠다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어쩌나요? 호주머니가 모두 텅 비어 있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꼭 드릴게요!” 괜찮다며 일어나 다른 칸으로 건너갔습니다. 더 많은 복이 기다리길 바라며 병원과 약국 개원(2024.06.09) 우리은행이 나간 자리에는 서초탑정형외과가, 마주 보는 할머니국수가 있던 자리에는 남부터미널 4번출구 약국이라는 긴 이름의 약국이 내외부 공사를 마치고 내일 개원을 앞두고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간판의 바탕색과 글자색을 통일하여 마치 한 몸처럼 보입니다. 3월부터 이어지던 공사로 어수선했는데 이제 안정을 찾게 되어 다행입니다. 아울러 어떤 손님들이 어떤 다른 모습으로 우리 건물을 찾게 될지 궁금하고 또 우리 가게에도 좋은 파장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합니다. 두 곳 모두 신규 개원이니 약사분도 의사분도 설레기도 하고 염려스러운 마음 또한 있겠지만 잘 됩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만 가지셔요! 홍삼 복용 작전(2024.06.08) 홍삼 장사 20년 차인 제가 경험한 바로는 홍삼 제품을 꾸준히 드시는 분들은 감기에 절대 안 걸리고 피곤한 줄 모릅니다. 혹시 독한 감기가 오더라도 슬쩍 지나가고 코로나도 맥을 못 춥니다. 그럼에도 최근 애엄마의 며칠 병원행은 순전히 홍삼을 멀리한 탓으로 홍삼 장사인 저의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한 일대 사건입니다. 애엄마 홍삼 복용이 저의 숙제가 되었습니다. 여러 수를 다해도 안 통하여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고가(高價)인 천삼 제품을 황금색 보자기로 잘 포장하여 집으로 직접 들고 가 선물이라고 보여주자마자 바로 뜯어 한 봉지를 섭취하게 하였습니다. 네! 감사하게도 슬그머니 져줍니다. 지금부터는 한 달여 머리맡에 마실 수 있도록 두고 오는 게 제 일입니다. 기쁨병원 노인환자(2024.06.07) 동네 어귀에 기쁨병원이 자리하면서 우리 건물 앞길을 지나시는 노부부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한 분은 환자로 한 분은 보호자로 동행하겠지만 대개 세 유형으로 나뉩니다. 할아버지가 앞장서고 서너 발 뒤에서 할머니가 다소곳이 따르는 전통형. 두 분이 나란히 붙어 걸으며 다정한 모습의 민주형, 이 경우는 옷도 비슷하게 차려있습니다. 화가 난 듯한 모습의 할머니가 주눅 들린 할아버지를 앞에서 이끌고 가는 일방형이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나중에 어떤 모습일까요? 슬그머니 여행 한번 가는 거 어떠냐고 떠보았더니 일 초의 여지도 없이 “당신 같으면 같이 가고 싶겠냐?” 바로 초(超) 일방형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충일을 맞아(2024.06.06) 6,25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어느 전투에 참전한 아버지께서는 사람(인민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 훗날 말씀하셨습니다. 간간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기도 했다는 그런. 아무튼 혁혁한 전과를 인정받아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셨습니다. 대를 이어 저도 군시절 인민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는데요. 총을 겨누는 게 아니라 글과 말로 인민군을 꼬셔내는 이름하여 면접작전이라 부르는 대면 심리전 원고를 작성하는 병이었습니다. 당시 여단장님께서 항상 전시 상태라는 상황을 명심하고 그 일에만 집중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니 저도 참전이 맞습니다. 조금은 억지일까요? 현충일인 오늘 오후 무렵 현충원에 들를 예정입니다. 음력 4월 그믐날(2024.06.05) 음력 4월 그믐날 새벽 한강 철교 위에 보일락 말락 빛을 잃은 달이 애처롭습니다. 불현듯 이런저런 이유로 일찍 세상을 떠난 사촌 이내 형제자매들 얼굴이 하나하나 스치듯 지나갑니다. 학동 큰댁의 정석 형, 월남 이모네의 효덕 효진 효율 형, 칠골 이모네의 춘자 누이 그리고 금식기도 끝에 세상을 등진 우리 집의 효심이까지. 한발 한발 걸으면서 모두의 영혼을 달래고 남아있는 가족들의 소식도 전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저 그믐달이 저의 깊은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었네요,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1 ··· 25 26 27 28 29 30 31 ··· 34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