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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절 행사에도(2024.08.29) 추석절 행사가 시작되어 엿새째인 어제 아침 일찍 문을 열고 기다린 지 여섯 시간 만에 첫 손님이 오십니다. 이후에도 들릴까 말까 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져 오늘 아침 확인한 성적표는 전국 매장 중 중간 아래에 머물러 있습니다. 거기다 지난 토요 일요일은 뒷자리 수석에 근접하고 있었으니 서초동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평균수준은 되어야 하는데 이거 참 부끄럽습니다. 경기불황이나 저조한 시황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저보다 앞선 분들이 많아서 이건 전적으로 제 노력 부족이 원인입니다. 안 되면 밖으로 들고 나가 외쳐도 보고 인근 사무실에 전달지도 돌리고 밤에도 눌러앉아 오가는 취객이라도 불러드리는 노력을 해야 하거늘.
비로소 제자리를(2024.08.28) 새벽하늘을 밝히는 달 주위로 모처럼 별 열세 개 모두가 함께 나와 반짝입니다.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계절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더위를 물리친 산들바람에 저의 발걸음도 날아갑니다. 미리 넘겨본 달력의 추석을 보고 화들짝 놀란 아파트 화단의 감도 몸집을 부쩍 키우고 다른 집의 대추는 이제 조금씩 익어갑니다. 길가 은행은 벌써 일을 마쳤나요. 떨어진 몇 개는 풍성한 가을을 예고합니다. 유난히 길고 더웠던 올여름을 이겨낸 우리 모두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희망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한강 물결 넘실넘실 춤을 춥니다!
골프장 길이(2024.08.27) 막바지 더위를 밀어내려는 우리의 의지가 푸른솔의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갑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저의 공은 바닥을 굴러 풀숲만 찾아가고 있어 중간중간 들여다본 성적표는 16명 중 16명에 머물러 있습니다. 안 되겠다 싶은 제가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듭니다. 후반 중간 홀 강남순으로 잠시 개명하고 레이디티로 달려가 객기를 부립니다. 주위의 안쓰러운 표정과는 달리 두 번 만에 그린에 안착한 공이 단 한 번 퍼터에 덜렁 들어가 버립니다. 우리 조 4명의 그 날 유일한 버디! 그리고 다음 홀부터는 다시 정상 티샷. 여기서 나의 구호! 국내 골프장 각 홀의 길이를 좀 줄여라! 운동 둔재들도 간간 파도 하고 버디도 좀 하자! 그리하면 내장객은 늘고 경기 시간은 확 줄 것인데.
그루터기의 새 생명(2024.08.26) 서초동네 가로수로 위용을 자랑하던 대왕참나무 한 그루가 어느 이유인가 몸통을 온통 잘리고 그루터기만 남았는데요. 그 그루터기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헤 수많은 새 가지를 자라게 하여 종족 보존과 유지 발전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둘에 그쳤으니 조상님들 뵐 낯이 없으며 국가발전이라는 대업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며 인류공영에 조금도 이바지하지 못했습니다. 네에,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채근하지 마세요. 항상 높아 보이던 하늘은 지금은 이불 아래 있고요. 제 옆을 지켜주던 달님 역시 저만치 멀리 있습니다.
고교동창 모임(2024.08.25) 어제는 방이동 금강산이라는 음식점에서 고교동창회 하계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50주년을 목전에 둔 나이여서 그런지 생기발랄하고 재기 넘치던 옛날과 달리 중후한 멋이 은근하게 흐릅니다. 우선 항상 떠들며 시끄러웠던 3인이 하나로 확 줄었습니다. ㅋㅋㅋ 그 한 사람은 누군지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실 것이고. 소주나 맥주 빈 술병이 줄고 막걸리를 찾는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막걸리는 몸에 좋은 술이여 잉! 술 대신 사이다 등 다른 음료를 놓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보입니다. 저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마음뿐입니다. 시내에서 2차 자리는 이제 우리들의 몫이 아닙니다. 사방이 젊고 풋풋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그냥 구경거리입니다. 조용히 머물다 나오는 게 예의입니다.
아이들 선물에(2024.08.24) 운전을 못 하는 저는 남보다 캐디백을 들고 이동하는 거리가 아무래도 더 많습니다. 젊은 날과 달리 한 손으로 들기에는 힘에 부쳐서 바퀴가 달린 가방이 있었으면 했는데요. 이번 생일 선물로 아들아이가 들고 왔습니다. 집에 이야기한 적이 없으므로 제 속을 알 리가 없는데 어찌 읽었을까요? 그런가 하면 딸아이는 카드 여러 장을 꼽을 수 있는 지갑을 내밉니다. 이 또한 요즘 가졌으면 했던 물건인데요. 아이들이 저보다 백번 낫습니다. 살면서 아이들 취향이나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해서 알거나 배려해 본 적이 없는데 저절로 고맙다는 인사가 바로 나왔습니다. 아울러 그간 아비 노릇을 제대로 못 한 제가 참 한심합니다.
작은 김정자(2024.08.23) 1963년 영암초등학교 2학년 2반(담임 김용진 선생님)에는 큰 김정자 양과 작은 김정자 양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빨간 스웨터 차림의 작은 김정자 양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학교 파하고 당시 서남리 집으로 올 때는 내 등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어디만큼 왔냐 당당 멀었다를 하면서 늘 같이 다녔는데요. 교실 짝꿍도 하고 싶어서 같은 자리에 앉았으나 선생님께서 뒷자리의 월례 양과 바꿔버려 서로 쳐다보며 계면쩍게 웃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70살 할머니가 되어있을 텐데 그때 우리 나이의 손자 손녀를 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에 나가 찾아볼까요?
글의 출발점을(2024.08.22) 생의 전반(全般)을 아우르는 글을 계획하면서 그 시작을 저의 첫 기억에서부터 출발할까 생각하는데요. 세 살일까요? 네 살 무렵일까요? 이야기로 엮을 만한 사실은 없고 한 장면 한 컷만으로 떠오르는데 강진군 작천면 평리 두만네 집 방문을 열자마자 소가 보이던 장면인지, 평리 학교 관사 마당을 기어 다니던 뱀을 가리키며 이비라고 했던 장면인지, 낮잠을 주무시던 아버지 귀에 성냥을 꽂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아버지의 화난 손길인지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다섯 살 여름 작천초등학교 팽나무 밑에 떨어져 울던 매미를 주워 그걸 자랑하고 다녔던 일은 전후까지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글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