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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뜰 무렵(2024.05.04) 해 뜰 무렵 집을 나서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보이는 게 많으니 걸음도 느려져 비로소 도(道)에 이르는 길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한강에 들어서자 곰솔 위에 앙증맞게 자리한 거미집 마을이 누구를 기다리나 모두 분주하고요. 이팝나무 위에 숨은 달은 술래 별이 찾을까 조마조마합니다. 건넛마을 붉은 노을에 놀란 고기 한 마리는 물 위로 솟구쳐 그간 갈고 닦은 높이뛰기 솜씨를 자랑합니다. 한창 꽃을 피워 벌을 부르는 하얀 아카시아꽃 사이에서 붉은꽃 아카시아도 얼굴을 내밀고요, 벽 채색을 끝낸 담쟁이덩굴은 이제 주변을 다 덮을 양 기세등등합니다. 동작역 근처의 때 이른 메꽃 한 송이는 덤입니다.
세대의 세대교체(2024.05.03) 우리 집안의 원(遠)자 항렬(行列) 세대가 완전히 저물고 석(錫)자 항렬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전성기라는 의미가 아니고 죽음을 앞둔 세대라는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아버지의 사촌 형제 즉 저로서는 당숙께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강진 작천에서 올라와 과일 행상에서 시작해 노량진 수산시장 중매인 32번으로 우리나라 조기 상권의 대표주자 영광수산을 운영하면서 친척들의 서울행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무엇보다 60을 못 넘기는 우리 집안 남자들의 수명을 아버지께서 80대까지 연장하셨고 이번에 성원 아재께서 90을 거뜬히 넘기셨으니 우리 석자 항렬 중에는 100세를 넘기는 일도 기대가 됩니다. 물론 저는 아닐 거고요! *우리 집안 진주 강씨 영묘원(강진군 작천면 학동소재) *우리 ..
동량에도 기술이(2024.050.02) 동량이나 구걸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또한 최소한의 염치나 체면 그리고 도덕성도 가지고 있어야 오래 갑니다. 고속버스터미널 역사 9호선 입구에 허구한 날 같은 자리 반쯤 누운 자세로 국가유공자라는 종이 팻말을 앞에 놓고 행인들과 눈을 마주치는 둥 마는 둥 동정 대신에 혐오를 팔던 할머니 한 분이 기어코 그 자리를 빼앗기고야 말았습니다. 그간 인내를 거듭한 지하철 당국이 강체철거에 돌입한 것입니다. 저 역시 오며 가며 늘 마주치니 불쌍해 보이던 처음과 달리 요즘은 눈에 좀 거슬렸는데 다른 분들 마음도 같았나 봅니다. 다른 곳에서 자리를 옮겨가며 좀 더 깨끗한 옷과 자세로 다른 팻말로 나서기를 바라며!
무색무취(2024.05.01) 모처럼 텔레비전 앞에 애엄마와 함께 앉아 흘러나오는 세계테마여행이라는 프로를 보고 있습니다. 무한 정적을 깨며 제가 한마디 합니다. “왜 나는 저런 곳을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뭔가 하고 싶은 일도 없을까?”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진단이 나옵니다. “매일매일 저녁이면 사람들 만나 부어라 마셔라 축제일인데 뭐가 더 필요하겠냐?” 갑자기 무색해졌습니다. 쌓아온 업이니 뭐라 반박할 여지도 없습니다만 스스로 진단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아침에 일어나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살고 있어서 특별히 따로 찾을 필요가 없어서입니다. *한강 애기똥풀꽃 군락
왼쪽 눈 수난사(2024.04.30) 왼쪽 눈의 불만이 대단합니다. 항상 편안한 오른쪽 눈에 반해 세상의 모든 시련은 왼쪽인 자신에게만 안긴다며 이번까지만 참겠다고 합니다. 2019년 2월 한강에서 넘어져 얼굴 뼈에 금이 가 왼쪽 눈 아래를 찢어서 봉합 수술을 했었는데요. 당시 일주일을 왼 눈이 갖은 고생을 다 했습니다. 이번에는 2주 전부터 왼쪽 눈 위가 부어오르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져 좋아지려니 생각했는데 점점 부위가 확대됩니다. 항복 선언과 함께 건너편 안과로 달려가 마취 없이 왼쪽 눈꺼풀 아래 수술을 단행했습니다. 몇 해 사이를 두고 왼쪽 위아래 공히 수난(受難史)의 주역이 되었으니 그 불만 당연합니다. 다 내 탓이니 용서하시게 앞으로 조심함세!
본적제도(2024.04.29) 과거에는 신상서류에 반드시 본적을 적었는데 이게 사회적 차별의 한 빌미로 작용할 수 있다 해서 지금은 일부 법정 서류를 제외하고는 여러 곳에서 사라졌습니다. 제 경우도 아버지 호적을 따라 영암군 삼호면 서창리 405번지가 본적인데요, 사실 이곳도 아버지께서 법정 분가로 강진군 작천면 갈동리에서 어쩔 수 없이 집안 당숙의 집 주소에 본적을 새로 만드신 것입니다. 애엄마도 저와의 결혼으로 저 본적을 따를 수밖에 없고 우리 아이들 역시 저랑 같다가 딸아이는 이제 사위인 오서방 가문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러니 우리 가족 모두 대대로 살아온 고향이나 출신지하고는 거리가 먼 셈입니다. 본적의 전통적 의미는 진작 퇴색했습니다.
로제비앙 골프클럽(2024.04.28) 저의 영원한 동지 산하 형제들과의 올해 첫 골프모임을 로제비앙 골프클럽에서 가졌습니다. 후배가 운전하는 뒷좌석에서 있는 폼 없는 폼 다잡아가며 앉아 있는데 골프장 들어가는 길이 어찌 익숙합니다. 아하! 저에게는 전설로 남아있는 과거 경기cc였습니다. 그간 세월이 흐르고 경기(景氣)의 부침에 따라 경기(京畿)에서 블루버드로 다시 큐로경기로 거기서 큐로로 바뀌고 이어서 또 새 주인을 만나 로제비앙이 되었다 합니다. 아마 저도 경기cc를 다녔던 때와 지금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벌벌 떠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쳤던 첫 홀 티샷이 폭풍을 몰고 왔던 1번 홀 역시 달라져 있었습니다. 당시 일을 아래 첨부해드립니다. 첫 티샷의 두러움 지금은 덜하지만 첫 홀 첫 티샷의 중압감은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뒤에 쳐..
일체동관분(2024.04.27) 몇 년 전 대선 과정에서 천공(이천공, 이병철)이라는 역술인이 나타나 세간의화제를 부르는 일들이 간간 있었는데요. 이후 우리 사회에 여러 무속인들이 유튜브 등 여러 매체를 통하여 활발하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정인(주로 정치인)의 생년월일을 들고 가 물으면 나름의 운세를 알려주는 방식인데요. 관심을 가지고 일 년여 지켜보았는데 과거의 일이나 현재의 일들은 비교적 읽어냈으나 미래의 일들은 자신의 주관이 많이 들어가 그냥 기대만 부풀게 합니다. 금강경 제18품 일체동관분(一體同觀分 )의 마지막 부분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