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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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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터기의 새 생명(2024.08.26) 서초동네 가로수로 위용을 자랑하던 대왕참나무 한 그루가 어느 이유인가 몸통을 온통 잘리고 그루터기만 남았는데요. 그 그루터기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헤 수많은 새 가지를 자라게 하여 종족 보존과 유지 발전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둘에 그쳤으니 조상님들 뵐 낯이 없으며 국가발전이라는 대업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며 인류공영에 조금도 이바지하지 못했습니다. 네에,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요?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채근하지 마세요. 항상 높아 보이던 하늘은 지금은 이불 아래 있고요. 제 옆을 지켜주던 달님 역시 저만치 멀리 있습니다.
고교동창 모임(2024.08.25) 어제는 방이동 금강산이라는 음식점에서 고교동창회 하계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50주년을 목전에 둔 나이여서 그런지 생기발랄하고 재기 넘치던 옛날과 달리 중후한 멋이 은근하게 흐릅니다. 우선 항상 떠들며 시끄러웠던 3인이 하나로 확 줄었습니다. ㅋㅋㅋ 그 한 사람은 누군지 말씀 안 드려도 다 아실 것이고. 소주나 맥주 빈 술병이 줄고 막걸리를 찾는 친구들이 많아졌습니다. 막걸리는 몸에 좋은 술이여 잉! 술 대신 사이다 등 다른 음료를 놓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 보입니다. 저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마음뿐입니다. 시내에서 2차 자리는 이제 우리들의 몫이 아닙니다. 사방이 젊고 풋풋한 아이들에게 우리는 그냥 구경거리입니다. 조용히 머물다 나오는 게 예의입니다.
아이들 선물에(2024.08.24) 운전을 못 하는 저는 남보다 캐디백을 들고 이동하는 거리가 아무래도 더 많습니다. 젊은 날과 달리 한 손으로 들기에는 힘에 부쳐서 바퀴가 달린 가방이 있었으면 했는데요. 이번 생일 선물로 아들아이가 들고 왔습니다. 집에 이야기한 적이 없으므로 제 속을 알 리가 없는데 어찌 읽었을까요? 그런가 하면 딸아이는 카드 여러 장을 꼽을 수 있는 지갑을 내밉니다. 이 또한 요즘 가졌으면 했던 물건인데요. 아이들이 저보다 백번 낫습니다. 살면서 아이들 취향이나 가지고 싶은 것에 대해서 알거나 배려해 본 적이 없는데 저절로 고맙다는 인사가 바로 나왔습니다. 아울러 그간 아비 노릇을 제대로 못 한 제가 참 한심합니다.
작은 김정자(2024.08.23) 1963년 영암초등학교 2학년 2반(담임 김용진 선생님)에는 큰 김정자 양과 작은 김정자 양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빨간 스웨터 차림의 작은 김정자 양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학교 파하고 당시 서남리 집으로 올 때는 내 등 뒤에서 어깨에 손을 올리고 어디만큼 왔냐 당당 멀었다를 하면서 늘 같이 다녔는데요. 교실 짝꿍도 하고 싶어서 같은 자리에 앉았으나 선생님께서 뒷자리의 월례 양과 바꿔버려 서로 쳐다보며 계면쩍게 웃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70살 할머니가 되어있을 텐데 그때 우리 나이의 손자 손녀를 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TV는 사랑을 싣고 프로에 나가 찾아볼까요?
글의 출발점을(2024.08.22) 생의 전반(全般)을 아우르는 글을 계획하면서 그 시작을 저의 첫 기억에서부터 출발할까 생각하는데요. 세 살일까요? 네 살 무렵일까요? 이야기로 엮을 만한 사실은 없고 한 장면 한 컷만으로 떠오르는데 강진군 작천면 평리 두만네 집 방문을 열자마자 소가 보이던 장면인지, 평리 학교 관사 마당을 기어 다니던 뱀을 가리키며 이비라고 했던 장면인지, 낮잠을 주무시던 아버지 귀에 성냥을 꽂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아버지의 화난 손길인지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다섯 살 여름 작천초등학교 팽나무 밑에 떨어져 울던 매미를 주워 그걸 자랑하고 다녔던 일은 전후까지 그대로 남아있으므로 글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토란을 키우며(2024.08.21) 가게 앞 토란이 이제 제가 원하는 크기로 잘 자랐습니다. 간간 사진을 찍어가는 분들도 있으니 대성공입니다. 제가 토란을 기르는 것은 저만의 특별한 추억 때문입니다. 영암 회문리 우리 집에는 없는 토란이 강진 학동 큰댁 뒤뜰에서 우산 같이 커가면서 넓은 잎에서 또르르 구르는 물방울들이 어찌 그리 영롱한지, 그리고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맺혀 있는 몇 방울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꼭 한 번 기르며 관찰 일기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해오다 60여 년 만에 그 꿈을 이룬 것입니다. 간판 바로 아래라 비가 와도 빗물이 들치지 않아 매일 물을 줘가며 정성을 기울이니 이에 화답합니다. 땅속에서 한 달 이상을 머무른 후 싹을 틔운다는 사실도 관찰 일기의 한 장입니다.
매미총(2024.08.20) 막바지 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새벽 여의도 길에서 죽거나 죽어가는 매미들을 거둬 한곳에 가지런히 놓고 영혼을 빌어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마리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아홉 마리가 모여 다음 생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후세의 사가들이 이를 발굴하면 매미총(塚)이라 명명하고 발견된 아홉 마리 미라를 심층 분석 중이며 곧 매미의 오덕 즉 문청염검신, 선비같이 곧고(文), 이슬을 먹고 사는(淸), 다른 것에 해를 끼치지 않는(廉), 자기 집이 없으니(檢), 살고 죽는 때를 아는(信), 을 칭송하던 그 당시 사회상의 일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대대적인 보도가 잇달을 것입니다. ㅋㅋㅋ 지나친 비약인가요?
꿈은 꿈에서(2024.08.19) 꿈은 꿈에서 이루어집니다. 스물한 살 청년 강남석은 한 여학생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를 표현할지 몰라 속으로 애만 태우는데 이를 간파하고 있던 친구가 마침 야외수업 중인 그녀를 알려줍니다. 그럼에도 가까이 가면 행여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먼발치에 서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으니 이를 가엾이 여긴 친구가 그 여학생을 데리고 옵니다. 마구 뛰는 가슴을 진정하고 용기를 내어 악수를 청하니 웃으면서 저의 악수를 받아 줍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둘 사이에 이야기 봇물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새벽닭이 울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또 어떤 기쁜 일, 즐거운 일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