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걱정할 일은 없다고 하면서도 어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닥치면 갑자기 걱정이라는 괴물이 어른거립니다. 아침 여의도를 벗어나 한강철교에 이르자 빗방울이 한두 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하나 별 수가 없으니 흑석역 주변까지는 그냥 가자며 걷는데 그 한두 방울에 걱정이 묻어옵니다. 이윽고 흑석역 주변에 이르렀으나 상황변화가 별로 없어 동작역까지 그냥 가기로 합니다. 서너 개가 되자 결정을 잘못했을까 괴물이 또 다시 저를 점령합니다. 결국 남부터미널까지 별 무리 없이 왔습니다. 걱정한 만큼 손해! (2020.06.24)
강릉고가 이기기를 바랐는데요. 저는 중학교 때 고교야구 라디오 중계에 매료되어서 정말 열심히 들으며 그걸로 야구를 머릿속으로 익혔습니다. 3학년 때 이르러서는 아예 표를 만들고 거기에 기록까지 하면서 듣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정작 야구게임을 실제로 본 것은 텔레비전도 아닌 고교졸업 후 1975년 동대문운동장에서 대통령배 고교야구 광주일고와 경북고의 결승전이었습니다. 당시 김윤환 선수가 3연타석 홈런을 날렸던 바로 그 경기! 경북고 성낙수 투수로부터.
(2020.06.23)
날씨가 더워지면서 우면산 일부 참나무에서 수액이 흐릅니다. 그런데 그 자리 반드시 보여야할 것들이 안보입니다. 어렸을 적 우리 집 들어가는 골목 참나무에 수액이 잔뜩 흐르면 위로는 풍뎅이들이 모여들고 아래에서는 사슴벌레가 올라옵니다. 둘 다 행동도 둔해서 모조리 저의 쉬운 사냥감이었습니다. 풍뎅이는 잡아다 다리를 꺾고 고개를 틀어 뒤집어 놓으면 날개를 흔들며 제자리돌기의 명수입니다. 아래 흙들이 대신 날아갑니다. 왜 그렇게 풍뎅이들에게 잔인했는지 저도 모를 일입니다. (2020.06,22)
왜 하필 제가 그리로 들어섰을까요? 아침 저 때문에 평화가 깨진 메추리(메추라기) 가족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걸어오다가 소변을 보려고 동작역 인근 풀숲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새끼메추리 몇 마리가 노는 모습이 확 들어왔습니다. 다가가는 순간 안 보이던 어미 메추리가 날고 이어 새끼 메추리들도 모조리 날개 짓을 합니다. 멀리도 가지 못합니다. 다섯 발자국도 안 되는 근처 풀 속으로 일제히 몸을 숨깁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내일 다시 가서 미안하다고 하렵니다.
(2020.06.21)
스마트폰이 배가 너무 부르다며 자꾸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우선 여러 카톡의 내용들부터 비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불편하다 합니다. 최근 통화내용과 메시지를 모조리 지워내도 역시 징징 댑니다. 저장된 2,000여 사진 중 일부를 버리기로 했습니다. 사진 역시 물건과 같아서 어느 한 장 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만 인물 사진은 가급적 남기고 풍경 사진 100여장을 지워내니 비로소 조용합니다. 내친김에 300장을 더해 400장을 소각했더니 32GB 공간 중 3.3GB 사용가능하다며 좋아합니다. (2020.06.20)
이른 봄부터 쭉 하얀 꽃을 피우던 나무들의 차례가 끝나자 드디어 초여름 자귀나무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분홍 실을 부챗살처럼 펼쳐놓은 꽃들이 하늘거리며 오가는 저를 유혹합니다. 자귀나무는 밤에 서로 마주보는 잎사귀가 닫혀 남녀가 안고 자는 모습을 연상시키므로 옛사람들이 야합수(夜合樹)란 이름을 붙였듯 실제로 조금은 야한 나무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른 나무들이 푸른 잎으로 새 단장을 끝낸 봄에도 가장 늦게야 잎을 피워 마치 이 나무가 없어져 버린 듯 찾는 저의 애간장을 태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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