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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세계에서 한권뿐이며 세계에서(2020.02.23~2020.02.26)

작금의 상황을 반영이라도 한 듯 퇴근길 9호선 전철도 그리 복잡하지가 않습니다. 제가 탄 칸에 총 58명이 앉거나 서 있습니다. 그중 마스크를 하신 분이 55명이고 나머지 3분이 맨 얼굴입니다. 바야흐로 마스크 전성시대, 물론 하얀색이 주류지만 간간 연한 파란색도 보이고 모양도 가지가지입니다. 긴급 물량이 해소되면 이제 패션화된 마스크를 구경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되기 보다는 얼른 이 국면이 끝나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2020.02.26)



단체 카톡방이 평소에는 구성원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우의를 돈독히 하고, 즐거움과 기쁨을 함께하는 장점이 있으나 지금 같은 비상시국에는 오히려 공포를 조장하고 쓸데없는 온갖 소문까지 들어야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조용히 잊고 지내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려는데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소식들로 쉴 틈이 없습니다. 조용히 나가면 다시 불러들이니 이런저런 이유대기도 궁색합니다. 안 보면 그만이라고 하겠지만 그게 어디 쉽던가요? (2020.02.25)



돌이켜보면 저의 삶은 겸손함을 배워가는 과정입니다. 어릴 때부터 각종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게 해서 쓸데없이 으스대는 것을 피하게 했고, 결혼 역시 셀 수없는 선을 통하여 여성에게 존경심을 갖게 했으며, 직장에서도 앞서 가지 못하고 또 어느 시점에서는 그만두게 하여 세상일이 만만치 않음을 일깨워줬으며, 그 외 재물이나 어떤 욕심에도 분명하게 한계를 보여주며 고개를 숙이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간간 들려하는 그 고개 때문에 지금도 마음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2020.02.24)



저 아래 한의원에서 홍삼을 주문합니다. 직접 걸어가서 전달했더니 원장님께서 미소와 함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고마운 마음은 제가 더 큰데요. 기분 좋은 걸음으로 돌아오다 길 옆 약국의 여 약사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역시나 상냥한 미소로 목례를 보내옵니다. 당연 저도 고개를 더 숙여 인사를 드립니다. 한의원이나 약국이나 어찌 보면 저의 업종과 대척점에 선 경쟁관계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리 아름답게 지냅니다. 사람 냄새가 폴폴 납니다. 세상은 좋은 것이여!(2020.02.23)




며칠 행방이 묘연하여 그 자리를 새것을 대체했던 돋보기와 극적인 상봉을 했습니다. 의자의 등받이와 엉덩이가 맞닿는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가 어제 청소하는 도중 우연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 주인께서 저를 찾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으나 제가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손이라도 내밀 수 있습니까? 의자 색 또한 제 몸의 색과 같이 보호색이 되고 말았으니 슬픔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네에, 이제까지 저를 위해 애쓴 점을 높이 사 원래의 자리로 복직을 명함과 동시에 새 돋보기는 대기발령을 명했습니다.

(2020.02.23)





세계에서 한권뿐이며 세계에서 오로지 저 혼자만 가지고 있는 책이 이제 네 권에 이르렀습니다. 작년도 밴드에 매일 올린 글을 또 한권으로 묶었습니다. 하루 작업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나 이렇게 한권으로 묶으면 제법 작품 같습니다. 가게에 놓아두고 간간 자랑질도 하면서 스스로 흡족해합니다. 앞으로 몇 권이 더 쌓일지 모르지만 먼 훗날 한 인간 양정 강남석의 역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내 사후에 이걸 그대로 간직할까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2020.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