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간첩 식별법은 거리에서나 공공건물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역시나 저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장하게 맨 후 삼엄한 방역망을 뚫고 서울성모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문을 통과하면서 체온을 측정할 때는 마치 제가 간첩인양 사뭇 긴장이 되기도 했었는데요. 사실 혈압약 처방을 위해서 가는 것이라 연기할까 생각도 했습니다만 위축되지 않고 최대한 자연스레 일상을 가져가려는 의지에서 오늘 의사 선생님을 뵙고 왔습니다. (2020.03.04)
골목길 탱자나무 잎에 앉은 앙증맞은 청개구리, 여름날 밤 마당의 편상에 누워 하늘을 보면 금방 얼굴로 쏟아질 것만 같았던 별 무리, 소나기 내리던 날 사립문을 거쳐 마당까지 올라와 퍼덕이던 미꾸라지, 아침이면 어김없이 내 단잠을 깨우던 닭들의 훼치는 소리, 어쩌다 부는 바람에 밤을 새며 노래하던 대나무 잎들의 합창, 눈 뜨면 산과 들, 그리고 질경이, 쇠비름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던 어린 시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때로 돌아갈 수 있으려나요? (2020.03.03)
항상 3월이면 이쪽 남부터미널 부근에 제일 먼저 봄을 알리던 영춘화를 올해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터미널 지하통로 공사로 영춘화 자리에 가림막이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못내 아쉬워 빈틈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빈틈 사이에 눈을 넣자 영춘화가 기다렸는 듯 노란 얼굴에 화색이 돕니다. 네에 작년보다 더 일찍 핀 게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저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확실히 작년보다 봄이 더 빠릅니다. 덩달아 지금 상황도 곧 좋아질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2020.03.02)
어제 3월의 첫 날, 낮 기온이 따스해서 봄을 찾아 나섰습니다. 우면산 입구를 막 지나자 화살나무 사이에서 새 둥지가 저를 반깁니다. 다가가 인사를 하려는데 고요만이 흐릅니다. 새들 역시 봄이 어디까지 왔나 마중을 나갔음이 틀림없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새나 저나 똑같이 한 마음입니다. 이를 지켜보는 포대화상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합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우리처럼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0.03.01)
조용한 가게에 카톡음이 크게 울립니다. 요즘 자제하고 있는 중인데 애엄마로부터 왔습니다. 서둘러 열어보니 경기도 어느 시 보건소장으로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홍삼 한 상자를 “고생한다. 몸조심해라!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우리가 늘 걱정하다.”는 문구에 저의 이름도 함께 써서 보내라는 분부였습니다. 네에, 우정이란 게 이런 것인지요, 안 보이는 데서도 생각하고 염려하고 격려하는 것. 바로 애엄마에게 당신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답을 보냈습니다.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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