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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인연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2017.03.14~2017.03.16)

어제 퇴근길 전철 속 복잡한데도 경로석은 비어있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더 많으신 분이 타면 양보할 양으로 덥석 주저앉았습니다. 한 정거장이 지나자 옆 두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다음 정거장에 이르자 제 앞으로 아짐 한 분이 다가옵니다. 벌떡 일어나 양보하면 그만인데 먼저 나이가 살펴집니다. 얼굴을 보고서는 판단이 안 됩니다. 그리하여 손을 보니 아직 참 곱습니다. 모르겠다싶어 그냥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몇 정거장이 지나 제가 내리려고 일어서자 그 아짐이 제 자리에 앉습니다. 은근 미안했습니다.

(2017.03.16)





29살 늦깎이에 새내기 대학생이 된 아들아이가 학교에 가야한다며 아침에 깨워달라고 합니다. 딸아이 졸업이후 식구들 아침에 깨우는 일이 없어졌는데 이제 4년을 다시 해야 하니 모처럼 가장노릇(?)을 하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벌써 끝낸 학교를 이제야 가면서도 마냥 기분은 좋은가 봅니다. 강의실이 어쩌고 교수님이 어쩌고 하면서 책을 사야겠다는 소리가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이제 좀 철이 들어가나 보다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리니 저도 아직 어립니다. 속아지 없습니다. (2017.03.16)





새벽이라 어두워서 무슨 물고기인지 모르겠고 그 크기도 가늠하기 어려웠으나 새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한강 철교에서부터 동작대교에 이르기까지 지금 한강변에는 어마어마한 물고기 떼가 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나뭇잎으로 보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전부가 물고기입니다. 바다 같으면 멸치 떼려니 생각할 텐데 강이라서 더욱 무슨 고기인지 궁금합니다. 아마 지금도 놀고 있을 것입니다. 서로들 자기자리를 못 차지할 정도입니다. (2017.03.15)




고등어조림 집 아짐이 장흥 시댁에서 가져온 엿기름가루로 만들었다며 식혜 한 주전자를 제 손에 들려줍니다. 감치는 맛을 즐기며 한 주전자를 금방 비웠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또 다른 식혜가 집에서 기다렸습니다. 딸아이가 제일 맛있게 담는 집의 식혜라며 몇 컵을 따라 줍니다. 흔하게 먹는 음식이 아닌데 하루에 두 번씩이나 접하다니 이는 필시 어떤 흐름이나 기운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가령 제 몸이 뭔가가 부족해서 이를 보충하느라 불렀을지 모른 그런......(2017. 03.15)



인연이라는 것이 인위적로 끊고 맺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상대가 있는 일이라 꼭 자신의 생각대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칠팔 년 전 가게 인근 음식점에서 일을 하면서 우리 집 홍삼을 가져간 아짐이 어느 날 미수금 이십만 원을 남기고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말 못할 사정이 있으려니 잊고 살았는데 어제 가게에 오셨습니다. 너무 미안했는데 홍삼을 살 일이 있자 발길이 다시 이쪽을 향하더랍니다. 웃으면서 “지난 일은 없었으니 잊으시고 이제 시작입니다!” (2017.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