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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어느 사이 공중화장실에서(2017.03.17~2017.03.20)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는데, 새벽에 보였던 것들이 석양에 하나도 안 보이는 것은 본시 없는 것이 내 눈에 보였던 것일까요? 아니면 본시 있는 것이 내 눈에 안 보였던 것일까요? 새벽 한강을 가득 채우며 넘실거리던 것들이 흉물스러워 한강관리사무소에 알렸더니 한참 후 돌아온 대답이 물지렁이가 산란하는 시기랍니다. 이 지렁이의 산란이 달의 주기에 동기화(動機化)된다는데 그 영향으로 새벽에만 보였던 것일까요? 호들갑을 떨었던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2017.03.20)



기억과 기력이 함께 소멸해가는 어머니께서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으신 게 있나봅니다. 스스로 존엄을 지키면서 자신을 잊지 않으시려는 노력입니다. 어제 저를 보자마자 “어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왔냐? 고맙다!” 하시더니 이내 “네가 강남석, 내가 박복순 맞지야?”하고 묻습니다. 맞다하자 그때부터 어머니는 “나는 박복순, 나는 박복순!”을 수회에 걸쳐 반복하십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요양사분이 저에게 한마디 건넵니다. “우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을 꼭 빼놓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목포의 봄은 따뜻했습니다. (2017.03.20)



모처럼 들린 우면산에 봄맞이가 한창입니다. 제일 먼저 생강나무가 한창 바쁘게 몸단장을 하다가 저를 맞습니다. “오랜만이에요. 이제 안 오시나했습니다. 이틀만 참아 주세요. 활짝 웃음을 보여드릴게요!” “흐흐흐 그러면 올해는 진짜로 생강을 만들 셈인가?” 낙엽 사이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낸 아기 잣나무들이 끼어듭니다. “보세요. 저도 키가 이제 한 뼘 정도는 됩니다.” 오며가며 주위의 낙엽을 치워주던 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입니다. 비로소 제 마음에도 봄이 왔습니다. (2017.03.19)





화장을 하던 애엄마가 눈가에 주름살이 하나 더 생겼다며 슬퍼합니다. 옆에 있던 저는 그게 마치 제 탓인 양 그저 미안합니다. 10여 년 전부터 쪽 다니는 이쁜 아짐 고객이 이제는 할머니가 되어 입술 주위에 잔주름이 늘어 갑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없어 마찬가지로 미안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간절히 바랍니다. 神이시여! 애엄마의 주름살을 저에게 주시고 우리나라 모든 여자들의 주름살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다 옮겨주세요. 주름살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2017.03.17)




어느 사이 공중화장실에서 낙서가 달아났습니다. 한 손에 휴지를 들고 공중변소에 쭈그리고 앉아서 앞문과 옆벽에 써놓은 자로 끝나는 낱말들을 써서 만든 에로틱한 글들을 읽고 그 그림을 보던 재미가 있었는데요. 가끔은 줄거리가 있는 글들도 만나고요. 야동의 대중화와 더불어 일종의 호기심이 해소되고, 국민의 수준도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워낙 관리 또한 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다 만나는 지금의 정치, 사회적 낙서는 옛 흥미에 미치지 못하네요. (2017.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