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미 나무 아래서 마구잡이로 새싹을 띄워 자라던 새끼손가락만한 은행나무 중 한 그루를 옮겨 와 가게 앞뜰 아무도 안 보이는 곳에 심었습니다. 남아있던 다른 새끼 나무들은 거리 정화 작업에 모두 희생당하고 말았으니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며칠 물을 주며 보살피다 그간 잊고 있었는데 잘 커서 제법 나무다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어서 남의 눈에 띄었다면 이미 그 수명을 다했을 것을 숨어 살아온 덕에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 아직은 일부러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으니 몸집을 키우는데 거칠 게 없습니다만 저 은행나무가 저 자리에 오래 있을지 제가 이곳에 더 오래 있을지 그건 오늘 우리 둘 다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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