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을 지나 다음 주 춘분을 앞두고 한강을 점령했던 괭이갈매기 중 본진은 서해로 떠나고 일부만 텃새로 자리를 잡을 양으로 군데군데 모여있습니다. 당연히 사납던 기세는 사라져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 오리들도 생업을 찾아 집으로 모두 떠났습니다. 되찾은 한강의 평화에 모두 안도합니다. 저리 작은 새들도 절기에 따라 변하는 자연의 이치에 조화롭게 순응하며 살아가다니 감탄하면서 저 또한 순리에 어긋나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비워내고 또 비워내서 그 자리에 사랑을 채우고 항상 감사하고 겸손하자 강남석!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砂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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