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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32살 대학 4학년 아들아이(2020.09.01~2020.09.06)

저는 지금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의 학동과 옴촌면 사동에 있는 조상님들의 선영에 인사드리러 가고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으니 편도 4번의 차량 바꿈이 있는 조금 지난한 여정입니다. 아버지 계실 때는 함께 매년 두 번의 명절에 거의 거르지 않았는데 아버지께서 동작동에 오신 뒤로는 5년만입니다. 조상님들의 화가 이르기 전에 찾아뵙고 그간의 불초에 대한 용서와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보살펴달라는 말씀을 전하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잘 지내온 것은 조상님들의 음덕임이 틀림없으니까요.(2020.09.06)

 

 

 

어린 시절 제가 출근할 때면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치킨 사와! 통닭 사와!”를 외치던 아들아이가 늦은 밤 치킨 한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딸아이와 셋이서 치킨을 두고 둘러앉아 두 가지 맛이 다 새로워 한참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이제 엄마 것을 남기자.”는 애들의 말이 들려옵니다. 순간 정신없이 먹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면서 엄마를 챙기는 마음에 흐뭇합니다. 오늘 아침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애엄마 귀에 이 이야기와 함께 “당신 애들 잘 키웠네, 고마워!”라는 칭찬을 남기며 집을 나섰습니다.(2020.09.04)

 

 

 

새벽 나절 심한 추위에 눈을 떠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벼이삭이 아닌 마이삭이 부른 비바람 탓인가 해서 창문을 열고 감지했으나 그도 아니고 가을 문턱이 낮아졌나 보아도 아직 겨우 9월 3일이니 그도 아닙니다. 어제 저녁 자면서 잠이 들기 직전에 끌 양으로 켜놓은 에어컨이 부른 추위입니다. 애시 당초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자려고 하면서 어찌 자기 직전을 제가 알아내서 손으로 작동을 멈출 수 있겠습니까? 그냥 리모컨에 시간을 한정했으면 그만일 것을 어리석음이 이정도이니 바보소리를 듣습니다.(2020. 09.03)

 

 

 

단정하게 머리를 깍은 소년이 들어오더니 덥석 의자에 앉습니다. 더운지 땀을 흘리기에 닦게 하고 물을 주었는데 좀체 말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몇 살이냐고 대답합니다. 장애아였습니다. 목에 걸린 스마트폰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오금역에서 잊어버려 한참 찾고 있었다며 제게 좀 데리고 있어 달라합니다. 당연하지요. 좋아할만한 빵과 음료수를 먹이며 30여분 기다리자 아빠가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열대여섯으로 보였는데 스물네 살이랍니다. 말은 안 했지만 그간의 고충이 고스란히 전해왔습니다. (2020.09.02)

 

 

 

 

32살 대학4학년 아들아이의 마지막 등록금을 납부했다고 합니다. 언제 끝나나 싶었는데 이제 딱 한 학기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대학원 진학을 종용하니 아들이야 일 이외의 명분이 생기므로 당연히 좋을 것인데 애엄마 또한 반대를 하지 않으니 이제 경제활동에 전념했으면 하는 저는 입 다물고 지켜볼 따름입니다. 애엄마 나이도 있으니 빨리 아이들이 일을 나눠서 맡는 게 순리이고 시집장가도 가야할 나이들인데 어쩌나요? 

(202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