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 이야기

주방 한구석에서 간택받지 못해(2019.07.30~2019.07.31)


나이 들어가면서 기억력이 떨어짐과 동시에 외우는 능력 역시 현저하게 떨어져버렸습니다. 일찍이 외우기는 저도 선수여서 월말 고사 때는 시험범위 내 내용을 공책 몇 장에 정리해서 한 자 틀림없이 외워버렸고 심지어 민법 총칙도 책 한권을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었는데 요즘은 단 세 줄을 외우기가 힘이 듭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려 반복해서 외우기를 3일 정도는 해야 비로소 틀림이 없이 기억해냅니다. 제 또래임에도 지금 공부를 하면서 각종 시험에 도전하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2019.07.31)



우리 일행이 새마을 식당에 들어서 자리에 앉으려하자 옆 좌석의 청년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제 자리로 옮겨갑니다. 우리와 지장이 없는 자리에 놓여있음에도 기특했습니다. 술 몇 잔이 오간 후에야 옆자리의 그 청년들이 보였습니다. 두 청년이 마주앉아 식사를 하는데 술이 없습니다. 아까의 예쁜 행실에 그냥 둘 수 없습니다. 폭탄주 한 잔씩을 안겼습니다. 23살, 25살 형제로 대학에서 스포츠관련 학과를 다닌다합니다. 수줍게 등을 돌려 예를 갖추는 모습이 남의 아들이지만 참 잘 키웠습니다. (2019.07.31)





점심 식문화를 다양하게 가져가기 위한 저의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남부터미널 내에 있는 송사부 수제 쌀고로케가 타깃입니다. 팥도넛, 고구마고로케, 단팥고로케가 각 500원 감자고로케, 옥수수마약고로케가 각 1000원입니다. 합계 3,500원이니 점심 한 끼로는 너무 착합니다. 거기다 저 혼자서 저 다섯 개를 다 먹지 못합니다. 간식으로 일부 남겨야합니다. 역시 봉다리 커피 한잔과 함께 어느 점 저의 기호에 부합합니다. 그런데 요즘 음식 이름에 마구 들어가는 마약 저거 합법인가요? (2019.07.30)




남부터미널역 4번 출구에서 아짐 한 분이 신문 한부와 함께 전단지를 나눠줍니다. 아무도 받지 않습니다. 열에 하나 정도 마지못해 받아갑니다. 저 역시 저 신문은 평소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에 받을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나눠주는 저 아짐이 무슨 죄랴 싶어 손을 내밀었습니다. 가득 쌓여둔 전단지를 모조리 배부해도 저 아짐에게 돌아갈 몫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더운 날 얼른들 받아들고 저 아짐의 얼굴을 환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면서,..(2019.07.30)




주방 한 구석에서 간택 받지 못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 고구마 하나가 너무 가엾어 물을 채운 컵 하나에 담아 제 방으로 옮겨왔습니다. 햇볕이 드는 창가에 두고 관찰일기를 씁니다. 역시나 저의 사랑에 보답이나 하듯 줄기를 세우고 잎을 가득 피었습니다. 방 전체가 고구마 밭입니다. 탁자에도, 옷장에도 침대에도. 올 가을에는 구고마를 수확해서 그간 신세를 진분들에게 보내렵니다. 고구마 하나가 연출한 자연이 이렇게 기쁘게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2019.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