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시 무렵 집을 나서는데 여의도에서 부는 바람이 너무 상쾌합니다. 가벼운 노래와 함께 자연스럽게 걸음을 한강으로 내딛으려는 찰라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산이 없어 무리하지 않고 택시를 잡아 가게로 바로 향합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더운 기운이 엄습 여의도의 그 청량한 바람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하여 바로 우산을 들고 우면산으로 아직 촉촉하게 젖은 어둠이 깔린 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며 나무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우산이 만든 오늘 아침 소식이었습니다.(2019.07.29)
친구들과 집 근처에서 술을 마시다 인근 애엄마 사업장에 들렸습니다. 딸아이가 직원들과 마무리를 하다 들어서는 저를 보는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팅팅 거리며 저를 대하는 태도 역시 영 걸렸지만 참았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카톡을 보니 “아빠~ 아까 더 예쁘게 맞이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종일 일하다 이제 정리하고 애들 빨리 보낼라 하는데 아빠가 또 술 마시고 온 게 순간 너무너무 미웠네. 미안해~~아빠 술 안마시고 오시면 얼마든지 더 특급서비스로 모실게!” 저도 답신을 “알았다. 내가 더 미안하다!”
(2019.07.28)
옆 건물에 프랑스 빵집이 있습니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저도 점심 한 끼쯤을 불란서 식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빵 중 그래도 먹을 수 있겠다 싶은 단팥빵 하나와 이름도 멋진 크로와상 하나에 6,500원을 지불했습니다. 생각보다는 비싸다 싶었으나 제가 우아해지는데 그쯤은 문제가 아닙니다. 봉다리 커피까지 타서 제법 그럴싸하게 점심은 마쳤으나 역시 저는 토종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잠시 후 속이 니글거리며 구라파전쟁이 나고 말았습니다. (2019.07.26)
비가 쏟아지는 아침 남부터미널역 출구 앞에 양복 차림의 청년이 오도 가도 못 하고 서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우산 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환승하면서 우산을 놓고 왔다며 편의점까지만 데려다 달라며 술 냄새를 확 풍깁니다. 저도 저런 시절이 많았고 지금도 간간 아침까지 술이 안 깨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귀엽습니다. 저는 가게로 들어가면서 아무 때나 우산을 가져다 달라 했습니다. 이렇게 가게 초입에서 빌려준 우산이 다섯 개가 넘는데 제대로 가져다 준 것은 단 한개! 이 청년은 어떨까요? (2019.07.26)
모처럼 비가 시원하게 쏟아집니다. 서울 하늘에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우산을 받쳐 든 저에게도 달려들어 바지 색을 바꿔 놓습니다. 일찍 자동차 좌판을 연 양말장사의 상품도 예외는 없습니다. 비 단속을 해보지만 속수무책입니다. 너무 부지런해서 낭패를 보는 경우입니다. 길가 빈틈에 자리를 잡은 질경이들의 잎도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모두 흔들거립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니 마음 역시 시원하게 확 트입니다. 옛날처럼 3일 연속으로 이리 내리면 좋겠습니다. 오늘 만큼은 더위도 맥을 못 춥니다.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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