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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며칠 전 저녁 술자리에서(2017.04.11~2017.04.15)


우리 아이들 키우면서 입에서 곧 나오는 것을 참아내며 공부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건넨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도 이에 잘 부응하여 정말로 집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저에게 보인 적이 없습니다. 당연히 성적표 한 번 못 보았습니다. 그런 우리 집에 난리가 났습니다. 올해 29살에 대학에 들어간 아들아이가 어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노트 정리도 해왔습니다. 미증유의 사건입니다. 지금 제 입이 벌어졌습니다.  (2017.04.15)




가게 앞 우리은행 여직원이 오더니 계좌정보 통합관리 시스템에 들어가 보라고 합니다. 확실히 제가 모르는 휴면계좌에 잔액이 있을 거라고 합니다. 평소 있는 돈을 그대로 둘 리가 없는 저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도 슬그머니 시스템에 로그인을 하고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직 이게 웬 떡입니까? 잔고가 남아 있는 통장이 6개 은행에 25개나 됩니다. 이체가 바로 가능한 금액과 은행에 직접 가서 찾아야 할 금액으로 나뉘는데요. 열 차례 술자리는 가능할 듯싶습니다.(2017.04.14)



포장 작업을 하다가 종이에 손을 베이는 일은 가끔 있으나 어제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종이 끝이 순식간에 손톱사이를 찌르고 도망을 갔습니다. 워낙 빠르게 손을 공격당했으니 손을 쓸 여유가 없습니다. 바로 피가 나면서 아픔의 강도가 손을 베일 때와는 비교도 못합니다. 이해인 수녀는 종이에 손을 베이고 이제 가벼운 종이도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어야지 다짐을 하셨다는데 저는 종이에게 역습을 가하여 바로 구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더 아립니다. (2017.04.13)



한강을 걸어오는 마지막 구간인 잠원동 아파트 사이의 길가 꽃나무 밑에서 고양이가 크게 웁니다. 인기척에도 아랑곳없이 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어디 아프려니 생각하며 몇 걸음을 옮기다 차에 치여 누운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봅니다. 방금 그 고양이의 울음을 이해합니다. 자기 새끼를 교통사고로 잃은 어미 고양이가 그 슬픔을 못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발정기 고양이 울음이 우연히 지금의 상황과 맞아떨어진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양이가 슬프니 저도 덩달아 슬픔니다. (2017.04.12)




며칠 전 저녁 술자리에서 술이 어느 정도 취해 이성의 지배에서 벗어날 즈음 슬그머니 몸속으로 분노가 스며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얼른 나가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제 주변에서 시빗거리를 찾습니다. 영 벗어나기가 힘들어 그냥 집으로 내달렸습니다. 마침 집에 있던 딸아이에게도 뭔가 평소 불만스런 얘기가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 냈습니다. 아침이 되자 부끄러움과 함께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최근 몇 개월 제가 정치사회적 현상에 너무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금강경을 집어 듭니다.

(2017.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