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장에 앉아 시작 시간이 다 되어도 딸아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여학생들 또한 같은 복장에 모두 얼굴이 다 똑같아 보입니다. 이윽고 식이 시작되어 국민의례 도중에 딸아이 전화가 옵니다.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지요. 30여 년 전 제가 졸업식 때 식장 밖에서만 놀던 때의 재현입니다. 이것도 대를 잇나요? 그래도 딸아이의 졸업멘트 “덕분에 학비 걱정 없이 누구보다 큰 배움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더 넓고 큰사람이 되어 보답하겠습니다.” 이 한 줄에 보람을 느낍니다.(2016.02.16)
딸아이의 대학 졸업식이 있는 날입니다. 요즘 학생들 필수 코스처럼 되어버린 1년의 휴학기간(무엇 때문에 했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음)을 거쳐 5년 만에 등록금에서 제가 해방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초기의 다짐은 1학년 후 학기 딱 한번 장학금으로 끝나고 나머지는 아주 신나게 놀다가 마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언제 놀겠습니까? 오늘부터는 노는 것도 부담일 텐데요. 그래도 나름 필요한 국가 자격증 셋에 애엄마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으니 그걸로 저는 족합니다. (2016.02.16)
토요 저녁 조문을 마치고 그대로 올라오기가 뭔가 아쉬워 장성군북일면 축령산 산골짝에 자리 잡은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을 청했습니다. 축령산의 편백향과 온통 편백을 소재로 사용한 친구 집의 향이 안팎으로 어우러져 몸과 마음이 저절로 청정해졌습니다. 6시 차를 타야하는 우리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손수 콩고물에 쑥떡을 먹기 좋게 알맞게 버무려 조청과 함께 내놓은 친구 처의 정성에 감동과 더불어 발아 보리와 엿기름, 식혜 이후의 조청, 바로 옛날로 돌아갔습니다. (2016.02.15)
어제 친구어머니의 조문 자리 역시나 지역이 호남인지라 실가리 된장국에 홍어가 나왔습니다. 마침 시장했던 우리 일행이 앉자마자 홍어 한 접시를 비웠습니다. 실가리 된장국을 좋아하는 제가 나섰습니다. 일하시는 아짐들께 직접 가서 요청합니다. “미안합니다. 저 서울서 왔는데요, 된장국 한 그릇하고 홍어 한 접시만 더 주시겠어요?” 그리고 낯이 좀 뜨거워서 덧붙입니다. “더 달라는 분들 있어요?” 아짐들이 저를 보고 빙그레 웃으시더니 “서울 양반 괜찮습니다. 아까 어느 한 분은 혼자 일곱 접시를 비웠답니다!”
(2016.02.14)
어제 저녁 서초동의 맥주 집 우리 일행 다섯 중 한 명만이 안경을 썼는데 옆 좌석은 열두 명의 일행 중 열 명이 안경을 썼습니다. 지나치게 많다 싶어서 오늘 아침 전철 속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체로 열 명 중 두 명꼴로 안경을 쓰고 있었습니다만 청소년층으로 가면 비율이 틀려졌습니다. 일행 네 명이면 네 명 모두나 셋이 안경입니다.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세대는 안경을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이런 와중에도 아직 우리 가족 넷은 맨 얼굴입니다. 공부를 덜해서......(201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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