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집에 이르렀으나 현관 앞에 빈 질소통이 보입니다. 더럭 겁이 났습니다. 문을 열고 거실에 발을 딛는 순간 또한 이런 아수라장이 없습니다. 모든 가구가 제 자리에서 이동해 있거나 열려서 뭔가를 뒤집어쓰고 있고 거실과 각방의 천정 역시 여러 부분이 열려 흡사 귀신이라도 강림할 지경입니다. 몸을 눕힐 자리 하나 보이지 않는데 애엄마 또한 아직 없습니다. 에어컨 고장이라더니 공사가 이리 클까요? 가게의 애엄마에게 전화로 긴급 외박허가를 받고 현장을 빠져나왔습니다. (2019.07.16)
건물 청소 아짐이 대략 아침 7시 즈음에 일을 시작합니다. 저 또한 그 무렵이면 가게에 도착하여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런데 이 분이 꼭 청소도구들을 우리 가게 앞에 두고 일의 방향도 저희 가게를 보면서 진행하십니다. 별 수 없이 눈을 마주칠 수밖에 없는데요. 전에는 그러면 달려와 가게의 깔판 청소를 해주시더니 요즘은 얼마 전 가세한 다른 청소 아짐의 눈치가 보였는지 그냥 눈길만 이쪽입니다. 글은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아짐의 목소리가 복도를 울리고 있습니다. 아짐 Please! (2019.07.16)
회색셔츠에 회색바지 그리고 회색운동화를 신은 제가 한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흑석역 주변에 이르자 바로 제 앞 20여m 전방에서 검정모자, 검정셔츠에 검정팬츠 그리고 검정런닝화를 신은 아짐 한 분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둘이 그대로 전진하다가는 정면으로 부딪히기 십상입니다. 순간 아재인 제가 저 아짐은 달려오고 있으므로 내가 살짝 비켜서는 게 좋겠구나 생각합니다. 아 그런데 둘의 생각이 같았을까요? 제가 오른쪽으로 몸을 트는 순간 그 아짐 역시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습니다. 아재와 아짐은 역시 지남철입니다. (2019.07.14)
점심으로 오리탕을 들면서 오리를 처음 먹었던 중학3학년 때의 한 장면을 기억합니다. 아니 정확히는 오리피입니다. 여름방학동안 2학기 공부를 혼자 다 마쳤으나 그 여파로 개학날부터 몸이 말을 안들을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건강을 염려한 부모님께서 생 오리를 사가지고 오시더니 오리의 멱을 따 높이 쳐들고 그 피를 대접에 받아 저더러 마시라합니다. 으악! 붉은 생피를...... 박카스를 타는 등 난리 블루스와 함께 억지로 목으로 넘겼던 그 9월의 어느 날! (2019. 07.14)
무슨 날이라 해서 특별한 음식을 찾아서 먹지는 않으나 어제 초복을 맞아 남부터미널 구내식당에서 삼계탕을 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습니다. 예상이 빗나가지 않아 병아리는 벗어났고 그렇다고 중닭에는 못 미치는 닭 한 마리가 통째로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항상 5,500원 식권이 아까웠는데 어제는 맛은 떠나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닭 한 마리에 이리 마음이 왔다 갔다 하니 저는 아직 당 멀었습니다만 그래도 어제 저를 위해 목숨을 던진 저 닭의 명복을 빕니다. (201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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