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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어머니의 현재

 

영산재 한옥 별채에서 어머니는 깨끗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이런 자리를 만든 며느리 칭찬을 몇번이나 거듭하셨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나신다면서 너무 좋아하시는데,

일찍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다음 날 아침 잠이 깬 어머니, 아버지와 나 이렇게 셋이서 영산호 주변 산책에 나섰습니다.

일요일이면 그 시간에 일어나기 힘든 다른 식구들의 편한 아침 잠을 위해서 가만히...

주위의 꽃과 식물에 한참 관심을 보이던 어머니께서 느닷없이 "광주 것들은 갔냐"고 물어보십니다.

광주에서 어제 내려온 여동생 식구들을 이르는 말입니다.

"같이 잤으며 아직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불구하고 10여분 간격으로 다시 물어보기를 거듭하십니다.

그때마다 또박또박 아직 같이 있다는 똑같은 설명을 다시 드려야했습니다.

여동생 식구가 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것만으로 다행이다 생각해야지요.

 

길에서 잘 익은 갓 씨를 훑으십니다. 그리고 손바닥에 펴보이면서 내년에 텃밭에 뿌리시겠답니다.

그냥 그러시라고 하면 좋겠는데 아버지께서 또 한 소리를 하십니다. "이제 내년에는 그일도 그만두라"고,...

물론 힘에 부치니 그냥 두라는 말씀인데 어머니께서는 그게 또 서운하게 들리십니다..

아버지의 지나친 간섭과 무시 그리고 큰소리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가슴에 맺혀있으시기 때문입니다.

 

한식당에서 셋만의 아침 식사 후 다시 방으로 오셔서는 환경이 새롭다 느끼셨는지

한참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우리가 왜 여기 있냐"고 물으십니다.

아버지 생신이라 다 모였노라고 말씀을 드리니 "아 그랬지"하시면서도 또 몇 번을 반복해 물어보십니다.

전반적으로 이제 날자, 행사, 지역 이런 기억을 지워버리셨습니다다.

뭐 그 정도야 잊으셔도 사는데는 지장 없으니.......

 

차를 달리 타서 제가 없는 다른 식구들 앞에서는 아들인 나만 여러번 찾으셨다하니

장남인 나와의 세월이 제일 길어서일까요?

 

서울에 도착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직접 받으십니다.

"잘 올라갔냐"고 물어보시기를 기대하면서....그러나 그건 우리의 희망이고

다들 잘 있냐고만 물어보십니다. 저는 대화를 이어가며 우리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시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한참의 우여곡절 끝에 다들 함께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럼요,엄니! 그 정도 기억하시면 좋은 거에요.

 

다 함께 산다면 같이 이야기할 기회도 많아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기억을 더듬으면

이 정도에서 기억들을 잡아둘 수 있으련만  현실이 사실은 어렵습니다.

이도 자식으로서 핑계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