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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4년 전 한 평 남짓한 침대만이(2018.10.01~2018.10.05)


며칠 전 새벽 눈을 뜨려는데 왼쪽 눈 부위 주위로 칼로 도려내는 듯 아픔이 지나갑니다. 딱히 어디라고 짚을 수 없는데 다시 또 아픔이 지나갑니다. 생각을 더듬습니다. 평생 몇 번 걸린 적이 없는 다래끼 전조증상입니다. 바로 처방으로 들어가 적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오늘 아침 역시 그 시간 목 부위와 뒷머리가 아팠습니다. 또한 생각을 더듬습니다. 베개 두개를 베고 잔 것입니다. 하나를 빼내고 다시 잠들어 적의 공격을 물리쳤습니다. 상쾌한 아침 비가 내립니다. (2018. 10.05)




젊은 날 여수 공장에 근무하던 시절, 서울로 올라가고 싶다는 이유를 문화생활에서 찾았습니다. 좀 더 다양하게 만나 볼 기회가 많을 것이므로 삶이 살찔 것이라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건 순전히 핑계였습니다. 처음 몇 달만 제법 이곳저곳 찾아보다 이내 지방에서와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어제 모처럼 대학로 어느 소극장에서 연극 한편을 보면서 이곳 대학로를 언제 왔었는지 헤아려보니 무려 13년 만이었습니다. 사실 가깝고 멀고는 거리가 아니고 곧 제 마음입니다.

(2018.10.04)




요즘 잔잔한 재미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옆 베트남 쌀국수 가게 앞뜰의 까마중을 하루 몇 개씩 따서 먹는 즐거움입니다. 우린 어릴 때 먹띠알(때꽐)이라고 불렀지요. 어디서 날아왔는지 두포기 까마중이 햇볕을 받으려 엄청 키를 키우더니 지금 마구 새까만 까마중 열매를 세상을 향해 쏟아 놓습니다. 우리나라 지천에 널린 풀이라 거들떠보는 사람 하나 없으니 온전히 제 것입니다. 내일 몫, 모레 몫 아직 많고 익기를 기다리는 어린 까마중 역시 많습니다. (2018.10.03)




했던 업을 내던지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가 봅니다. 지난 4월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게를 접었던 남부터미널의 김밥 아짐께서 조금 야윈 얼굴로 나타나셨습니다. 쉬기도 어렵고 놀기도 어렵다며 배운 게 그거라서 다시 김밥 집을 재 개업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수년 직업으로 가졌던 일인데 어찌 마음이 쉽 버려지겠습니까? 오후 바로 격려 방문하니 김밥을 그냥 주시는 것은 물론 마침 나와 있던 남편을 처음 소개를 합니다. 남편의 말씀도 뜻밖입니다. “제 집사람에게 늘 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10.02)





4년 전 한 평 남짓한 침대만이 오롯이 어머니의 영토가 되자 어머니께서는 있는 것을 버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일주일 만에 아버지인 남편을 여의시고, 사시던 집 살강의 그릇이며, 정성으로 가꾸던 텃밭의 양아, 그리고 독아지의 장맛까지 차례로 던지시더니 이제는 자신의 걸음마저 잊으셨습니다. 그래도 못내 아쉬웠는지 아들의 얼굴이며 이름은 어찌 남기셔 엷은 미소로 저를 맞으며 제 이름 두자는 정확히 기억하십니다. 반가우면서도 한편 서럽고 죄송한 마음에 돌아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던 어제 목포행!

(2018.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