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이른 새벽 여의도 술집 앞 처마 밑에 길 잃은 남녀 한 쌍이 쪼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술에 잔뜩 취한 여자아이는 몸이 반쯤 풀려 가니 마니 앙탈을 부리고 멀쩡한 남자아이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랩니다. 이윽고 합의에 도달했는지 남자아이가 승용차 문을 열어놓고 여자아이를 부추겨 세웁니다. 그러나 이걸 어쩌랴! 둘의 몸이 차에 이르기도 전에 길에서 불이 붙고 말았습니다. 부둥켜안고 비벼대는 둘의 몸 뒤로 사랑의 비가 촉촉이 내립니다. “사랑의 비야 적셔다오 사랑의 비야 적셔다오!”

*빗 속의 사람들/호안 미로(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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