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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새벽 세시 거실이 소랍스럽습니다(2019.09.28~2019.09.30)


한 달을 넘기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찾아뵌 목포의 어머니, 여느 때처럼 알듯 모를 듯 미소만 잠시 보여주시더니 이내 침묵. 이제는 앙상하게 남은 뼈와 거기에 조금 붙어있는 살로 겨우 생명을 유지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으셨구나 생각에 슬프고 짠한 마음이 들다가도 저리 계시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억지로 스스로를 달래봅니다. 말씀은 하시지 않아도 듣고는 계신다는 어느 지인의 위로에 힘입어 “엄니, 잘 계시씨요 잉, 또 올께!” (2019.09.30)



결혼식 참석을 위해 가게에 둔 양복을 입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윽고 어제 어침 모처럼 와이셔츠도 다려 입고 넥타이도 나름 근사하게 맸습니다. 그런데 이거 어쩌나요? 윗 양복이 안보이고 여름옷이 보입니다. 아뿔사 바지는 제대로 입고 윗옷은 나오면서 그냥 의자에 걸쳐둔 옷을 들고 온 것입니다. 별 수 없이 위아래 짝짝 양복 차림으로 어색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요즘 짝짝이 양말은 다반사이고 이제는 짝짝이 양복까지. 아서라, 양정 이러다 양정까지 짝짝이 될라 (2019.09.30)





식사량이 조금씩 줄어 지금은 밥 한 그릇에 몇 숟가락 조금 못 미치는 량이 적당합니다. 저절로 소식으로 가고 있어서 조금 더 먹었다 싶으면 속에 부담이 갑니다..어머니께서 항상 적은 양, 일정량의 밥을 드시면서 단 한 숟가락이 많더라도 그대로 남기시고 평소 날 거 또한 드시지 않았는데요. 저 역시 나이 들어가면서 이런 부모님의 식생활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부드럽게 목에 넘어가던 생선회에 손이 안가고 따듯한 음식이 더 좋습니다. 술 안주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09.28)



스마트폰 화면이 손가락 터치에 쉽게 반응하면서 간간 원하지 않은 전화가 가기도 하며 문자도 스스로 보내는가 하면 웹들끼리 숨바꼭질을 하다 친한 웹들이 자리를 감추고 뜬금없는 웹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곤 합니다. 그러자 제 책상위의 노트북 화면도 덩달아 따라 나섰습니다. 평소 23개의 아이콘이 화면 맨 왼쪽에 3줄로 나란히 앉아있었는데 갑자기 그림이 커지면서 화면의 절반을 장악해버렸습니다. 쓰는데 이상은 없지만 보기에 영 거슬립니다. 스마트폰 웹과 달리 제 힘으로만 정상으로 돌리는데 애를 좀 먹었습니다. (2019.09.28)




새벽 세시 거실이 소란스럽습니다. 애엄마가 아들아이를 심하게 질책하는 소리입니다. 맨 날 새벽에 귀가하는 아들을 참다 참다 이제 폭발한 것입니다. 저도 진즉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참고 있었는데 아니 계속 참을 것이 뻔했고요. 나이 서른이 넘도록 속을 차리지 못해 저렇게 지천을 듣는지 한심합니다. 뭐라고 변명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저건 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이야기일 뿐 내일이면 다시 새벽에 들어올 게 뻔한데. 저를 닮은 것은 분명 아니고 그렇다고 애엄마를 닮은 것도 분명 아니면 화성인간인가?

(2019.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