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이면 치매(2015.12.10~2015.12.14)
간간 가게에 오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올 때마다 매번 다른 명함을 들고 옵니다. 어느 날은 모 주간 신문의 논설위원이라는 명함을 내밀기에 “웬일이냐?”는 눈으로 쳐다봤더니 “그냥 광고 영업하는 거야”라고 실상을 털어 놓습니다. 이번에는 어느 회사의 전무라는 명함을 또 자랑합니다. 이제까지 받은 명함의 직위직업을 늘어놓으면 30개가 넘을 것입니다. 명함이 전부는 아닐 것인데,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사려 깊게 살펴보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일 텐데요. (2015. 12.14)
어제 밤 사우나 실 라커룸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맨 몸으로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하십니다. 상체를 보듬어 일으켜 세우고 옷을 입혔습니다. 그러면서 집 호수를 물으니 제대로 대답을 못하십니다. 이리저리 마구 헷갈리는 것입니다. 12층인지 20층인지? 전화를 해드리겠다고 집 전화를 물었습니다. 기억을 못하십니다. 안 되겠다 싶어 밖에 일하는 사람을 불렀더니 이럴 때는 119가 먼저랍니다. 우여곡절 끝에 119와 할아버지의 가족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습니다. 저의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2015.12.13)
청소 아짐은 모르실 것입니다. 남자 화장실에서 청소를 하고 있으면 마주치기 민망하여 슬그머니 돌아서 온다는 사실을. 야쿠르트 아짐도 모르실 것입니다. 본인의 휴일은 챙기시면서 그 전날 휴일 날 분까지 두 배로 꼭꼭 가져다 줘서 우리 냉장고에 못 먹은 야쿠르트가 넘쳐나는 것을. 구두 닦는 아짐 역시 모르실 것입니다. 한 달에 슬금슬금 빼먹는 날이 며칠 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는 사실을. 우리 아름다운 사회를 위하여 저도 배려해주세요, 아짐들! (2015.12.12)
요즘 한창 바쁘신 애엄마가 딸아이 생일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어제 밤 제가 이 사실을 알려주자마자 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선수를 쳤습니다. 이에 애엄마보다 한 발 일찍 먼저 들어와 제가 딸아이에게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면서 이 사실을 이릅니다. "송은아! 축하한다. 엄마는 모르고 있었단다. 내가 알려줬어야!" 유치찬란한 아빠의 생일 축하였습니다. 네에 오늘 딸아이의 생일을 맞아 어제와 오늘의 경계시간에 일어났던 우리 집의 개그콘서트입니다. (2015.12.12)
비가 오는 날이면 치매병동 어르신들의 동요가 심하다고 합니다. 겨울비가 주룩주룩 내린 목포의 어제 아침 어머니께서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는 전언이 왔습니다. 평소 성품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요양병원의 어머니를 전화로 찾았습니다. “어찌 내가 여기 있는 줄 알고 전화했냐? 데리러 올래” 아주 가라앉으셨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는데 다행이다, 네가 올 때까지 여기 가만 있으마!" 제 전화에 반가워하시는 어머니 목소리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2015.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