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안 늙을 줄 알았던 애엄마도(2015.07.07~2015.07.11)

강남석 2015. 7. 9. 12:27

어제 오후 검정색 천 전부에 송송 구멍이 뚫린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늘씬하고 훤칠한 여인이 가게로 들어섰습니다. 용모처럼 말씨도 시원하게 먼저 인사를 건네십니다. 순간 두 눈이 그분의 겨드랑이 맨 살 쪽으로 쏠려가는 제 자신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아니 내가 손님에게 이러면 안 되지! 아마 눈치는 못 채셨겠지?" 하면서 정신을 수습하려는데, 그런데 이분 양팔을 격하게 올리거나 흔들거리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십니다. 눈을 어디에 맞춰야할지. ㅋㅋ그래도 즐거웠어요. 잉!(2015. 07.11)

 

 

 

어린 시절 겨울이면 의례히 수숫대나 대나무로 발을 엮어 안방 윗목을 차지했던 고구마 어리통을 두대통이라 부르는 것이 표준말이라는 것을 어제 알았습니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추억으로 남기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리통을 설치한 겨울의 시작 처음에는 키가 닿지 않아 내 손으로 고구마를 내어먹기가 여간 성가스럽지 않았는데 겨울이 끝나갈 무렵에는 허리를 굽혀야 꺼낼 수가 있었습니다. 찐 고구마에 싱건지(동치미) 그리고 물에 끓인 보리밥, 겨울방학 내내 점심! (2015.07.10)

 

 

 

밤늦게 12시가 넘어 술에 취해 들어간 죄를 사하러 아침부터 애엄마에게 갖은 아양을 떨고 있는데 딸아이 방문이 열리며 송은이가 한 소리를 던집니다. "아빠는 뭔 잘못을 저질러서 이리 살살거려요?" 이 한마디에 모두 폭소가 터지면서 상황이 간단히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살이란 소리를 들어도 가족들이 그로인해 기쁘면 그만이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운전도 못하고 못질도 못해서 한동안 애엄마의 핸드폰에 제 이름은 "강바보"였습니다. (2015.07.09)

 

 

 

엘리베이터 앞뒤로 거울이 있어 머리등 용모를 다듬을 수 있었던 잠원동 아파트와 달리 이사를 온 이곳 여의도의 아파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늘 집 화장실 거울에서 머리 부분에 빛이 나서 찬찬히 보았더니 몇 개월 사이 탈모전선이 점점 이마를 향해 그 영역을 마구 넓혀오고 있었습니다. 남아 있는 머리카락도 마치 황량한 벌판 속의 나무처럼 위태위태합니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빗어서 내리던 그간의 헤어스타일을 빗어서 넘겨야 하나요?(2015.07.08)

 

 

 

안 늙을 줄 알았던 애엄마도 이제 늙어가는 것 같습니다.얼마 전에는 머리에 흰머리가 있다며 보여 주더니 오늘은 평소에는 깨워도 일어나기 힘들어 하던 사람이 여섯시가 못 된 시간에 일어나 앉아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야 하는 것인지 측은하게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처음으로 둘이 함께 2층 사우나로 내려가는 모습을 연출할 수는 있었습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카운터 앞에서 "홍구아빠!"라고 저를 부르며 같은 가족임을 확인 하십니다. ㅋㅋㅋㅋㅋ (2015.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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