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쯤 이사가 시작되도(2015.03.11~2015.03.14)
날이 풀려 상쾌한 마음으로 우면산을 오르는데 30여m앞에서 남자 한 분이 산악회기를 넣은 것으로 보이는 함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속도가 늦어서 제가 앞서가야 할 형편입니다. 그때부터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앞서자니 아무래도 저 함 하나를 도와드려야 할 것 같고, 그러자니 또 나는 힘이 부칠 것 같고. 부러 뒤로 쳐져 걸으면서도 결코 편치 못합니다. “그래 좀 가서 거들지 뭐! 아니야 그냥 뒤쳐져 가지 뭐!” 정상에서 본 그분 얼굴이 밝아 다행이었습니다. (2015.03.14)
하루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손님만 오는 우리 가게에 어제는 외국 아짐들이 세 명이나 찾아왔습니다. 독일아짐, 러시아아짐, 미국아짐이었습니다. 그중 러시아 아짐이 아주 밝았습니다. 저를 보려고(?) 달려왔다며 반가운 미소를 마구 보냅니다. 저도 싫지는 않아서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이거 외국어 회화 실력이 따라줘야 일을 만들 것인데 근근이 조금씩 듣기만 하지 다른 화제로는 대화를 못 이끌어가니 천상 '잘 가라!"는 인사나 건넬 따름입니다.(2015.03.14)
항상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이 있습니다. 지하철 9호선 출퇴근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오늘 아침 실제로 접해보니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이 되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렸습니다. 반면 이사한 아파트는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사우나실과 실내 골프연습장 그리고 독서실까지 있네요. 이를 놓칠 리가 있나요? 오늘 아침 바로 사우나실을 이용했습니다. 물론 내일도 해야지요. 널찍한 곳을 혼자 전세 낸 느낌이었습니다.(2015.03.13)
출근을 위해 여의도에서 거꾸로 나오려니 기분이 좀 묘합니다. 30년 전 여의도와 처음 인연을 맺은 당시에는 아침에 들어가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나왔는데 이제는 저녁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나오는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아이들 둘 역시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태어났으니 고향으로 왔다고 봐야 하나요? 덜 정리된 이삿짐을 그대로 두고 30년 전에도 있었던 옆의 음식점으로 가서 가족 모두 모처럼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2015.03.12)
아마 지금쯤 이사가 시작되고 있겠지요. 순서에 따라 짐을 싸는 일을 하려나요? 못 하나 못 박는 변변치 못한 실력 탓에 항상 이사 등, 힘이 들어가는 일에서는 집안의 전력에서 제외 1순위가 바로 저입니다. 그래도 일찍 집을 나서면서 집안의 곳곳에 그간 우리 가족들을 잘 대해준데 고개 숙여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현관의 경비아저씨께도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이사를 다 마칠 저녁 무렵 이제 저는 여의도로 가겠지요. 사실은 저 이사 갈 동호수도 아직 모릅니다. (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