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앞 서초파출소에서(2014.03.25~2014.03.28)
영암 학산에서 강진 작천으로 시집을 온 어머니는 친지나 유제(이웃)로 부터 학산댁, 학산 아짐으로 불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버지는 학산양반, 학산아제가 되었지요.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 애엄마는 시집 올 당시
광주 양동에서 살았으니 양동댁, 저는 양동양반으로 불려야하는데 요즘 이런 표현은 거의 사라졌지요?
이름 부르기를 꺼려했던 시대의 자연스러운 풍습인지 아니면 시집온 새댁을 배려해서 친정 마을을 따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훨씬 정 있어 보입니다.(2014.03.28)
연습장의 키 큰 아짐이 저의 운동이 끝날 무렵 들어오시더니 내일 일찍 올 때니 다시 한 번 붙자고 하십니다.
그러자고 하니까 저 앞 타석의 오래 전부터 가끔 말을 하고 지내는 아짐의 얼굴이 뾰루퉁해졌습니다.
할 수 없이 마치고 나가면서 그 아짐께 일부러 다가가 군대 간 아들의 안부를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짐이 얼굴이 밝아지시며 대답을 하십니다."네에 잘 있답니다. 제가 남터 가게로 언제 차 마시러 한 번 갈게요!"(2014.03.28)
모처럼 애 엄마를 따라 장보기에 나선 어제의 킴스클럽. 많고 많은 식료품 중에 그래도 늘 익숙한 식품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중에서도 갑자기 내 눈을 사로잡은 게 있었으니 바로 칡입니다.
세상에 이 시대에도 도심 한가운데서 생 칡을 팔다니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어렸을 때 간식거리로 씹었던 밥 칡, 나무 칡 내음이 입안에 돌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대밭에서 캐 온 밥 칡이 씹히는 게 많아 제일 좋았었지요. 그 흔한 녹말이지만.(2014.03.27)
구력은 20여년이면서 아직도 90대 중후반에 머무는 저는 모든 게 엉성해서 연습장에서도
가급적 남이 안 보이는 시간이나 타석을 선택해서 조용히 혼자 연습합니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키 큰 40대 후반의 아짐이 스크린 한 게임을 붙자고 합니다.
몇 번 마주쳐서 낯이 익은 편이라 거절은 못하고 지산cc를 선택 18홀을 마쳤습니다.
오늘 또 이거 톡톡히 망신을 당하려니 생각했습니다만........ 글쎄요? 상상하셔서 댓글로!(2014.03.26)
몇 년 전 앞 서초파출소에 순경 초임 발령을 받아 가끔 가게에 들렀던
아들 또래의 경찰관이 다시 우리 관내로 오게 되었다면서 인사를 왔습니다.
그간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고 승진도 했다며 근황을 들려주는데 아직은 앳되고 순수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고향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가까운 처가에도 자주 들려서 부모처럼 의지하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잊지 않고 찾아오니 이 또한 저의 기쁨입니다.(2014.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