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동냥치를 기억하여(2023.10.09)

강남석 2023. 10. 9. 08:25

우리 어릴 때에는 밥을 구걸하러 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이분들을 거지나 동냥치로 불렀습니다. 영암 회문리 시절 겨울이든 여름이든 항상 검정 외투 차림에 깎지 않고 그대로 길러 치렁치렁한 머리와 손에는 항상 종이와 연필을 들고 다녀 우리가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하다 저런 신세가 되었다고 믿었던 동냥치 한 분을 신작로에서 늘 마주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이 우리 집 마당까지 와서 우뚝 섰습니다. 깜짝 놀라고 무서웠는데 어머니께서 고봉으로 담은 밥 한 그릇에 김치까지 한 상을 평상에 차려주며 잘 드시고 가라는 덕담까지 남기자 게눈 감추듯 비우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신기하게도 영암 거리에서 그분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