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일년에 한번 정도 오실까 말까(2019.12.16~2019.12.22)

강남석 2019. 12. 17. 09:00


지방에서 점심 약속으로 모처럼 애엄마를 동행한 ktx안, 그런데 순방향과 역방향 마주 보는 좌석에 앉은 일가족으로 보이는 네 명의 이야기가 너무 크게 들립니다. 슬며시 잠이 들었다 깬 애엄마가 조용히 시키고 오면 이천만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제가 뻔히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지금 몹시 불편하다는 내색입니다. srt에서는 간간 조용히 하라는 방송도 하드만 어찌 ktx는 내버려둘까요? 애엄마 심기를 살피느라 내내 긴장한 하루였습니다. (2019.12.22)



복잡한 퇴근길 전철 속 자리 하나가 나자 3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달려갑니다. 그러자 등 뒤에서 60대 후반 정도의 아짐이 그녀를 밀쳐내더니 마치 자기 자리인 듯 먼저 앉아버립니다. 미간을 찡그리며 못마땅한 표정의 그녀, 자세히 보니 얼굴에 땀이 범벅입니다. 뭔가 몸이 불편해서 앉으려고 한 것 같은데 자리를 차지한 아짐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한 정거장이 지나 자리가 나와 다행히 앉아 숨을 고르는 그녀가 안쓰러웠습니다. 나이가 벼슬은 아닌데. (2019.12.20)



자애로우신 애엄마의 윤허를 득하고 가게의 창고(천장의 다락방)에서 자고 일어났습니다. 가게에서 자면 집에 오가는 두 시간여를 절약할 수 있어 좋고 또한 사방이 가로 막혀 완전하게 빛과 소음을 차단 한 번도 깨는 일이 없이 새벽까지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집에서 자는 것이 정상이고 밖에서 자는 것이 비정상일진데 저는 비정상이 오히려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항상 제가 술이 취했을 때만 일어납니다. (2019.12.19)



확실하게 내일 도착해야 할 택배물건이 있어서 인근 우체국으로 갔습니다. 대기 없이 바로 직행한 접수대의 담당이 예쁘장한 여직원입니다. 상냥하고 친절한데다 일처리도 빨라서 뭐라고 칭찬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이름표의 강씨라는 성이 반짝반짝 웃습니다. 이를 놓칠세라 재빨리 “아이고 우리 강씨 여자들 중에 이리 예쁘고 일처리도 잘 하시는 분 처음이에요!” 굳어있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오르더니 더 예뻐졌습니다. (2019.12.17)



일 년에 한번 정도 오실까 말까하는 아재 손님을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당연히 오랜만이다는 인사를 제가 건네니 가게에서 잠깐 봤을 그분이 저를 기억할 리가 없습니다. 누구세요라는 반문이 옵니다. 정관장 아저씨라고 크게 대답하는 저에게 “네에! 그러시지요. 이번 설에 꼭 들리겠습니다.” 인사 한 마디에 서로의 정이 오고가고 덤으로 저는 설 고객 한분을 확보합니다. 이래저래 밝은 아침 즐거운 한주가 또 시작됩니다. (2019.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