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며칠 전 애엄마의 경고가(2017.12.26~2017. 12.31)

강남석 2017. 12. 28. 17:42

아홉시도 덜된 이른 시간에 같은 색 옷을 입은 어려보이는 남녀가 들어왔습니다. 부모님 선물을 고른다 해서 남매사이려니 생각했는데요. 나름 자기들 수준의 상품을 선택한 뒤 매대의 백만 원짜리 상품을 가리키며 남자아이가 묻습니다. “저거 먹으면 벌떡 서나요?” 어이가 없어진 제가 나이를 묻자 스물한 살이라 합니다. 다시 무슨 사이냐고 묻자 여자아이가 대답합니다. “친구 사이고요. 제가 한 살 더 많습니다!” 지방의 여자아이 집으로 인사를 가는 길이라는데요. 저들의 앞날에 신의 축복과 가호가 함께하기를.. (2017. 12.31)




어제는 남산국악당에서 모처럼 우리 가락과 어울렸습니다. 친구의 아들이 속해있는 음악집단 바라지의 신작 입고출신(入古出新) 발표회였는데요, 처음에는 그저 격려의 의미가 컸으나 막상 장이 열리자 휘모리장단의 휘산조에서부터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 우리 것이 좋습니다. 30대 안팎의 젊은 국악인 8인이 재해석한 우리의 전통음악, 그들이 표방한 것처럼 시종 세상을 더 인간답게 만드는 화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음악집단 바라지 만세! 정광윤 만세! (2017.12.30)




송년 모임 하나가 어긋나 일찍 들어간 집에 식구들도 아무도 없고 밥통에 밥도 없습니다. 모처럼 가족들에게 봉사할 기회가 생겼다고 좋아라하며 저녁밥을 짓기로 했는데 쌀 역시 없습니다. 쌀까지 사오면 더 좋아할 것으로 생각 아래 마트로 가서 10kg들이 한 포대를 42,000원에 들쳐 메고 집으로 온 순간 애엄마 전화가 왔습니다. 쌀이 없다 이야기하니 싱크대 아래를 열어보라 합니다. 이런 뒤주가 싱크대에 붙어있을 줄이야. 얻어들을까 힘들게 들고 올라온 쌀을 애엄마 눈에 안 띄는 곳에 살짝 넣어 두었습니다.

(2017.12.29)



딸아이가 일본 여행을 갔는데 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궁금하지만 그저 잘 있다 오기만 바랄뿐 물어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 입으로 공부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곧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걸 참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 귀가 시간이 마구 늦어져 걱정이 되어도 단 한 번도 물어보거나 조기 귀가를 채근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의 관심방법이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도 모든 면에서 이 기조를 유지할 것입니다. (2017.12.28)




음식점에서 우리 자리 일을 하시는 분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항상 만원 한 장을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습니다. 받고 나가시더니 이내 다른 분이 들어오십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 분께도 만원을 드렸습니다. 이 분 또한 금방 나가시더니 또 다른 분이 들어오십니다. 슬그머니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냥 앉아있는 것으로 참아냈습니다. 앞으로는 쭉 두고 보다가 나오면서 할지 말지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행해야하는데 저도 또 때 하나가 묻습니다.(2017.12.27)



며칠 전 애엄마의 경고가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내년도에는 기필코 술을 끊게 하고야 말겠다는 것인데요. 말씀의 톤이 술 취해 들어오는 저를 현관에서 옷가방을 들려 쫒아낸 적이 있던 과거와 달리 경제망을 봉쇄할 것 같은 기세입니다. 이럴 때는 예봉을 미리 무디게 하는 게 상책입니다. 무려 3일을 일찍 들어가서 조신하게 보내자 어제 저녁은 마침 들어와 계시던 그분이 저녁상을 차려주면서 말씀이 온화해지셨습니다. 제가 한마디 더 아양을 떱니다.“어야 나 미리 끊어부렀네. 걱정말소 잉!” (201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