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저에게는(2017.08.29~2017.09.01)
찐 달걀 두 개가 들어있던 빈 케이스를 손에 들고 스님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뭐라고 저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제가 잘 듣지를 못해서 되물었습니다. “부자 되세요!” 스님의 인사로 적절했을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제 노트북에서는 금강경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금강경을 화제로 몇 마디 하실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묵묵부답입니다. 한번 휘 들러보고 나가셔서 그 빈 케이스를 저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제가 그 스님의 번뇌를 대신 버렸습니다. (2017.09.01)
평소 종교나 무속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애엄마가 어제는 수유리로 점을 보러가는 처제를 따라 나섰다합니다. 이른바 우정출연이지요. 그 자리에서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신을 넣었는데요. 신이 내린 그 무속인이 깨어있는 분이었나 봅니다. 주로 “대운이 임박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옆에서 돕는다.”는 등의 격려성 멘트였다 합니다. 제가 진짜 마음에 드는 말은 그 다음입니다. "당신 남편에게는 목소리 크게 하지 말고 항상 좋은 말만 해야 한다!"고 했다는데요. ㅋㅋㅋ제가 가서 술이라도 살사야겠습니다.
(2017.09.01)
장모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저는 저의 생일이 임박했음을 단박에 알아 차렸습니다. 아마 양복을 고르시는 중이었나 봅니다. 두 가지 색을 불러주시며 뭐가 좋은지 저의 의중을 살피시는 것입니다. 반갑고 고맙기에 앞서 송구스런 마음이 우선입니다. 저의 결혼 이후 단 한 번의 생일도 놓치지 않으셨고 지금은 연금으로 두 분이 생활하시면서도 항상 과분한 선물을 보내주시니 큰 사위로서 염치가 없습니다. 슬그머니 보전해드릴 방법을 강구해야지요. (2017.08.31)
아담한 체구의 아짐이 밝은 웃음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자신이 풀코스 마라톤을 424회 완주하였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저의 경우 단 10여m도 부담스러운데 42.195km를 그것도 제 또래의 여자 분이 저리 많이 해냈다니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라톤 분야에서는 꽤나 유명하셔서 국내일간지는 물론 일본신문에까지 여러 차례 소개된 정미영님 입니다. 이런 유명 인사를 어찌 그냥 보낼 수 있습니까? 바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2017.08.30)
어렸을 때 저에게는 맨드라미가 꽃이 아니었습니다. 줄기에서 꽃봉오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자연시간에 배운 암술과 수술이 보이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큰 줄기에서 곧장 머리 부분에 관처럼 펼쳐져 꽃으로 보기에 어려웠고 그 모양도 사나운 장닭의 벼슬을 닮아 예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서울 시내에서 마주친 맨드라미를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같이 수탉 벼슬을 닮은 계룡산처럼 웅장하고 그 기개가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대단합니다. (2017.08.29)